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27일 앞둔 10일 야당 대선후보를 직접 비판하며 사실상 대선판의 중심에 뛰어들었다. 갑작스럽게 형성된 '문재인 대 윤석열'의 구도가 대선 정국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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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문 대통령은 지난 9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소위 ‘집권 시 전(前) 정권 적폐청산 수사’ 발언과 관련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ㆍ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라며 “(윤 후보는) 답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뉴스통신사 교류협력체 '아태뉴스통신사기구'(OANA)의 의장사인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 서면인터뷰를 한 후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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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 후보는 본지 인터뷰(2월 9일자 1, 8면)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수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전제로 한 얘기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 자신의 입장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참석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입장문은 참모들과의 별도 회의나 추가 의견 교환 없이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곧장 발표됐다. 문 대통령이 직접 야당 후보와의 정면대응을 결정했다는 의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입장 발표에 대해 여당과도 얘기 나눈 바 없다”며 “의견을 교환해서 풀 문제였다면 이런 공개적 논의가 진행됐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사과를 요구했으니, 윤 후보가 질문에 답하고 사과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이라고 덧붙였다.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집권시 적폐 수사' 발언 등을 규탄하고 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9일 공개된 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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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을 “정치보복을 예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위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대적인 정치보복을 공언한 후보는 처음 본다”며 “이것이 선거 전략 차원이라면 저열한 것이고, 소신이라면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도 이 부분을 심각하게 본 것 같다”고 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대응에 대해 “대선 개입”이라며 반발했다.
“야당 후보를 흠집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청와대가 야당후보를 사사건건 트집잡아 공격하려고 하는 전초전이 아니길 바란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주장이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가짜뉴스에 대한 해명으로 정당한 반론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것까지 선거개입이라면 ‘식물 대통령’처럼 죽은듯이 직무정지 상태로 있어야 하느냐. 선거개입 얘기를 하기에 앞서 (윤 후보가) 그런(적폐수사) 발언을 안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 본관에서 부이 타잉 썬 베트남 외교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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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대통령을 흔들고 선거판에 불러내 소재로 삼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정치 적폐이고 구태”라며 선거전에 사실상 등판하기로 한 문 대통령의 결정을 야당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등판에 대해 “시기와 방식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정체와 배우자 관련 의혹이 겹친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안에 대해 야권의 중진 의원은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은 일종의 도화선이었을 것"이라며 "이 발언이 울고 싶던 청와대와 여권의 뺨을 때려준 격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 후보가 적폐 등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고, 결과적으로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하면서 직접 대선판에 뛰어들 명분을 문 대통령에게 만들어준 측면이 있다”며 “문 대통령의 등판은 당장 이재명 후보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던 문 대통령의 지지층을 결집시킬 동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출신의 민주당 의원도 본지 통화에서 “여론의 관심이 김혜경 여사 관련 논란에서 '대통령과 야당 후보의 정면대결'로 급속하게 전환됐다”며 “의도했든 안했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대선 정국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윤 후보에 대한 입장 표명과 거의 동시에 공개된 문 대통령의 '연합뉴스 등 7개 통신사'와의 서면인터뷰에서도 대선에 영향을 줄만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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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고 밝혔다. 여권 지지층을 겨냥해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며 우려의 메시지를 냈다. 이재명 후보 지지여부를 놓고 이어지고 있는 여권 지지자 내부의 갈등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임기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다가온 선거 시기와 선거의 결과가 남북정상회담을 갖기에 부적절한 상황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회담의 성사 여부가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대화 기조 유지를 위한 정권재창출의 필요성을 내포한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공개된 인터뷰는 윤 후보의 발언 이전에 했기 때문에 이날 입장 표명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큰 맥락에서 보면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비노(非盧)·비문(非文)으로 분류되는 이재명 후보가 출마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간 언급해오지 않던 노 전 대통령 얘기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뭔가 큰 마음을 먹었다는 뜻 아니냐”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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