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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검찰을 정부 내 또 다른 정부로? 검찰개혁 리셋 선언한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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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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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분야 개혁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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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검찰의 수사 권한을 확대하고,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수사지휘·예산편성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사법 공약을 14일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유지돼 온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절차까지 손 보겠다는 것이다. 검찰권 분산,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검찰개혁 방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어서 이 문제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인사권만 남기고 검찰에 다 준다

윤 후보가 이날 발표한 사법 관련 공약은 ‘검찰 독립성의 최대한의 보장’으로 요약된다. 먼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검찰청법 8조를 폐지하기로 했다.

윤 후보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3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그 기준과 내용이 법과 원칙보다 정치적 압력과 보은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사지휘권의 발동으로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가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의혹 사건을 제대로 지휘하지 않고 있다며 지휘라인에서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 독립성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윤 후보는 자신의 검찰총장 경험에 비춰 “수사지휘는 악용되는 수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조항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검찰 업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때부터 만들어져 70년째 유지되는 이유다.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업무 수행 중 문제를 야기했을 때 선출된 권력(국회의원)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직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검찰총장 대신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했다. 이에 책임자로 법무부 장관을 낙점하고, 주요 수사를 지휘할 수 없는 장관이 책임만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다만 검찰의 독립성은 지키기 위해 임기제로 신분이 보장되는 검찰총장에게만 수사지휘를 할 수 있게 했다. 검찰 독립성 확보를 위한 조항이자 검찰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인 셈이다.

그런데도 윤 후보는 수사지휘권 남용 문제를 보완하는 대신 아예 폐지하겠다고 했다. 민주적 통제 절차가 사라질 뿐더러 검찰총장이 정치적 사안에 직접 책임을 지게 돼 직무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등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마련된 장치”라며 “장관의 지휘권마저 없어지면 검찰에 대한 통제 장치를 잃게 되고, 검찰이 정부 내의 독자적인 정부로 자리잡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윤 후보는 검찰청 예산도 법무부와 별도로 편성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법무부가 검찰 예산을 편성하게 돼 있는데, 법무부를 건너뛰고 검찰총장이 기획재정부에 직접 예산을 요구해 편성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사지휘권·예산편성권을 잃은 정부는 오롯이 인사권만으로 검찰을 통제해야 한다. 검찰 내 줄서기가 더 심해질 수 있다. 더구나 윤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측근인 A·B 검사장의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인선 가능성을 내비쳤다. 검찰청 예산이 별도 편성되면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 의무가 커져 국회에 의한 수사 통제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윤 후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의해 검찰 주요 인사가 통제되고 관리된다”며 “검찰 업무는 사법시스템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의한 통제와 영장심사 등 법관에 의한 통제로 검찰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검찰도 보완 수사+고위공직자 수사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제한됐던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도 윤 후보 집권시 다시 넓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윤 후보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은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고, 검찰 고소·고발 사건은 검찰이 직접 처리하며, 국민이 원하는 곳에서 사건 처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에 담았다. 모두 수사권 조정의 원칙을 허무는 내용이다. 현재는 송치 사건에 보완수사가 필요해도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없고, 고소·고발 사건은 경찰이 처리를 전담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업무 폭증으로 인한 수사지연과 부실수사 우려를 검찰개혁에 ‘역진’하는 방식으로 풀겠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개혁도 공언했다. 고위공직자 부패사건에 공수처의 우선권을 보장한 조항을 폐지해 검·경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수처 제도의 안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권 분산이라는 검찰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윤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공언한 터다. 윤 후보의 공약이 현실화하면 검찰이 전 정권 수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을 재조정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제도 변경 1년 만에 다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공수처의 우선권을 폐지한다면 중복수사로 수사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럴 바엔 공수처를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검찰에 고소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게 되면 검경 수사권 조정 전보다 더 많은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해야 할 수 있다”며 “검찰 인력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범죄피해자 구제 공약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무고죄는 중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처벌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형법의 무고죄 이외에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에 별도 처벌 조항을 신설해 가중처벌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이대남’을 겨냥한 공약으로 풀이된다. 일반 무고죄와 구분되는 별도의 가중처벌은 성차별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효상·허진무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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