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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미투 이후의 삶,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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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지난여름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라는 이름으로 10편의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진행되고 있을 시점이었다. "누구도 차별당하면 안 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는 법안에 시민 대부분도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는 '성소수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연재는 15년째 반복되는 이 물음에서 더 나아가고자 한 시도였다. "성소수자는 어떤 차별을 당해요?"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가 '사회문제'라고 부르는 것들을 '차별'로 설명하고자 했다. 디지털 성범죄, 죽음과 장례, 직장 내 괴롭힘, 높은 부동산 가격과 주거권. 우리가 겪는 일들, 혹은 너무나 평범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일들. 그러나 각각 별개로 보이는 영역의 활동가, 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차별구조에 관해 사회가 고민할 것이고, 이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이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다. 그리고 2022년 오늘날까지, 우리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차별금지 사유에 넣을 것이냐"에 묶여있다. 이걸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 선거를 앞둔 지금은 '민감한 이슈'라고 한다.

<프레시안>이 다시 차별의 평범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엔 누군가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이야기한다. 매 순간의 긴장, 중요한 순간에 주어지는 선택권의 제약. "누가 어떤 차별을 당하는가"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차별의 평범성 드러내기> 연재 모아보기 (☞바로가기)

첫 번째는 권위적인 직장에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밤낮, 휴일 구분 없이 주어졌다. 업무 범위도 그랬다. 인사권을 쥔 최고 상사 가족의 일도 그의 업무 중 하나였다. 매 순간이 폭력적인 업무 환경.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해진 성적 괴롭힘까지. 쉽게 그만 둘 수 없었던 건 그의 커리어이자 생계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책 <김지은입니다>의 저자이자 '안희정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 김지은 씨다. 

프레시안

▲<김지은입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대법원판결 후 2년 5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현재까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생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또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요.

김지은 : 평범한 일상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조금씩 나아지다가도 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요. 신변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주거지에 침입하려는 시도도 있었기에 당분간 예전처럼 공직이나 일반 직장으로 돌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기술을 기초부터 배웠고, 기술 자격시험을 통해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여러 가지로 삶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서 언젠가는 정상적인 노동자로서 일하고, 생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으시거나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을 간헐적으로 만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프레시안 : 이 사건 후에 사건을 축소하고 지우려는 움직임, 김지은 씨를 향한 조직적인 압박, 괴롭힘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가해가 우리사회에 '2차 가해'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만든 것 같습니다. 김지은 씨는 그 사건 후의 변화를 느끼나요.

김지은 : 처음 미투를 했던 4년 전보다는 더 많은 분이 문제의 본질에 관심 가져주신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자극적인 보도에 의심부터 품는 분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진실을 아시고 함께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번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환되어 평가받고, 이름 모를 무수히 많은 분의 사담 거리가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요. 범죄 사실이 소명된 상황에서조차 거짓과 음모론을 가지고 또다시 공격하고, 의심하는 행위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2차 가해는 결국 또 다른 고발을 막고,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근절되고 자제되어야 해요.

프레시안 :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도 최근 김건희 씨 녹취 등과 같이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최근까지 2차 가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나요.

김지은 : 인간답게 살고 싶어 미투를 했고 지옥에서 벗어났지만, 결국 2차 가해의 굴레 속에서 또다시 고통받으며 지내야만 했어요.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도 가해자와 그 가해를 방치한 기관으로부터 사과 받지 못했고, 결국 반성하지 않는 이 모습들이 새로운 2차 가해의 씨앗이 되었어요.

고발 직후, 저는 제 직장이었던 충남도청으로부터 노동자로서, 피해자로서 그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어요. 전·현직 일부 도청 공무원들은 공개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며 감싸는 발언을 이어갔고,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가세하여 가해자 측 주장에 관심 두자며 여론전을 이어갔어요. 그런 2차 가해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분들이 최근에도 비슷한 발언들을 부끄러움 없이 반복하고 있고, 그중 여러 명이 지금도 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주요 직책들을 받아 활동하고 있어요.

프레시안

▲2019년 9월 9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대법원 판결 후 변호인단과 여성단체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겪은 직장 내 권력관계, 직장 내 괴롭힘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권력형 성폭력'의 심각성은 부각된 반면 '여성 노동자가 겪는 노동문제'라는 인식은 부족한 것 같아요. 

김지은 : 저는 미투를 하고 충남도청에서 해고를 당했어요. 충남도청이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발표를 언론에 하던 날 도청으로부터 면직 통보를 받았죠. 미투를 함으로써 생존권을 잃는 흑백의 운명이 우려한 대로 바로 현실이 되었어요. 비정상적인 근무 환경과 무참히 가해진 성폭력이 조직 수장에 의해 이루어졌는데도 조직은 개인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고, 진정한 사과나 반성조차 없었어요.

성별과 직급을 떠나 상사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했다고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나기는 쉽지 않아요. 폭력의 형태만 다를 뿐 제가 겪은 폭력도 그 어느 노동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런 폭력에 노출된 많은 노동자가 살아가고 계세요.

그런데 일부에서 성폭력은 다르다고 말해요. 재판 내내 공격받았던 것이 이 노동의 연속성 때문이었어요. 성실히 노동자로 일했던 제 시간들이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공격받았어요. 많을 땐 한 주에 140시간, 통상적으로는 130시간을 근무했어요. 새벽 출근과 잦은 야근, 그리고 노동자로서 부당하게 느꼈던 업무 지시를 이행했던 것조차 모두 생존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어요.

최근에도 정치권에서는 어느 분의 직장 내 갑질 문제, 공권력의 남용 고발 사건을 이야기하며 '왜 그런 지시를 받으면서도 그만두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고발인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잘못은 폭력의 피해, 갑질의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가해한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인데도, 고발을 한 사람을 동료이자 노동자로서 인정해주지 않아요.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폭력의 경우에도 나와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 동료의 일이라 생각해주시고 더욱 더 적극적으로 함께 나서주신다면 이런 문제들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프레시안 : 2018년 미투도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피해자이지만 해고됐습니다.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직장, 그 조직의 업무 환경은 어땠나요. 또 사건 외 직장 내 괴롭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나요.

김지은 : 조직은 폐쇄적이었고,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있었어요.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지만, 번번이 조직의 대의 앞에 아주 작은 일로 치부되었고, 희생을 강요받았어요. 당시 안희정은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겠다는 연설을 하며 환호받았지만, 정작 대선 후보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노동 시간에는 한계가 없었어요.

안희정의 수행비서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했고, 휴일도 거의 없었어요. 한밤중의 시간이라도 지시 문자에 답이 늦으면 호된 질책을 들어야만 했어요. 업무 시간과 업무 영역의 제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안희정이 가족과 가는 요트 강습을 예약하거나 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아 전달하는 등의 일은 비일비재했어요. 주변에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지사 지시는 뭐든 해내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어요.

조직에 불법과 부정이 횡행했지만, 모두가 눈 감았어요. 그곳에서 조직의 대의와 목적 이외의 모든 것들은 사사로운 일이었어요. 인권도 정의도 그저 선거의 승리 뒤에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 불과했어요.

프레시안 : '여비서', 특히 권력자 남성의 여성 비서라는 직업은 그 자체가 매우 성적 대상화 돼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업무 중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 있나요.

김지은 : 제가 하던 비서의 업무는 남성 전임자들이 하던 업무였어요. 성별만 바뀌었을 뿐인데 제게는 '여성' 수행비서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었어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인식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졌어요. 저와 가까운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는 제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어요. 상급자에게 어렵게 보고하고, 주변에 알리기도 했지만, 모두가 큰일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차별이 가장 낮은 곳이 정치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캠프에 가서 절실히 느꼈어요. 고용의 불안정성에서 오는 언제라도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정치인 한 명을 중심으로 신도 집단처럼 모여 있는 지지자들의 성향,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대의 앞에 실무자가 겪는 어려움은 사사로운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았어요. 정치권은 아주 견고하고 두꺼운 유리천장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경험했던 조직만의 모습은 아닐 거로 생각해요.

프레시안 : 최근까지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박원순 사건이 대표적인데요. 그런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또 많은 여성 노동자가 피해를 겪고도 '2차 가해'라는 직장 내 괴롭힘이 두려워 사건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지은 : 앞서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권력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를 도운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치권 곳곳에 영전했고, 진실을 증언해주고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준 분들은 공직을 떠나야 했어요. 권력을 가진 가해자를 돕거나 2차 가해에 앞장선 사람들이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모습,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어느 누가 피해자의 곁에 서겠다고 선뜻 나설 수 있을까요?

최근에도 어느 정당에서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들을 공개적으로 올리고, 미투에 음모론을 덧씌웠던 사람을 영입 인재라며 발표하기도 했어요. 말뿐인 반성이 아니라 정말 눈에 보이는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해야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권력형 성폭력이 주로 일어난 정당에서 2차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내보내고, 쫓겨난 조력자들을 다시 불러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구조적인 해결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노동자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실지 이해하고 있기에 더 걱정돼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에요. 가해자 잘못이죠. 당신은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힘내세요."

프레시안

▲#MeToo #WithYou ⓒ연합뉴스



프레시안 :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지만, 사실 사건이 해결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폭력이란 게 완전한 해결이란 건 있을 수 없지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또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할 수 있게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김지은 :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한 조직의 불평등하고 민주적이지 않은 노동의 구조가 결국 성범죄라는 악랄한 폭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폐쇄적인 노동 환경의 문제가 범죄가 일어나는 토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만약 제가 몸담았던 정치권 조직에 노조가 있었다면, 또는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 나서 주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정치권은 면직과 고용이라는 생존권이 오롯이 정치인에게 달린 고용 사각지대이기에 그런 도움은 더 절실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노동자들의 연대보다 정치인 한 사람에게 잘 보여야 계속 고용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동료의 문제를 돕기보다는 스스로 살아남는 데 더 집중을 하는 상황이에요. 고용의 안정성을 위한 노력 그리고 조직적인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에게 일벌백계가 내려져야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엇보다 가해자와 관련 조직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하고요.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평등의에코100>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이러한 사건의 해결에 어떤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하시나요.

김지은 : 미투 이후 '여성을 채용하지 않겠다', '여성과 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직장에서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한 직장 내 폭력과 다르지 않은 성폭력에 유독 혐오와 차별의 프레임을 씌워요. 상하 권력 관계와 폐쇄적 조직 문화에 의한 범죄는 그 어떤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고, 피해자는 남성이 될 수도, 간부가 될 수도 있어요. 모두를 동일한 사람으로 바라봐주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본적인 존엄을 지켜준다면 그 어떠한 종류의 가해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련법의 제정이 중요하고, 여러 폭력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요.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언젠가는 불편하고, 어려운 이야기보다 조금 더 행복한 이야기들만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겠어요. 이 싸움이 끝난다면 정말 편안한 날이 오겠죠? 말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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