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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조선업 인력난 비명]물 들어왔는데 노 저을 인력없다…"영암·거제 휘청일 수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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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협력사 모인 대불산단 가보니

친환경 선박 시장 호황에

현대삼호중공업 올해만 15척 수주

협력사들은 정작 인력없어 비상

협력사 대표 "용접공 일당,

최근 두세달 사이 확 뛰었다

사람없어 인건비만 천정부지"

"국내 조선 경쟁력 잃으면

中·동남아로 수주물량 넘어가"

아시아경제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LNG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들이 늘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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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영암)=정동훈 기자] 23일 전남 영암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내부에 들어서자 육중한 선박 블록과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조각들이 약231만㎡(약 70만평)규모의 조선소를 가득 채웠다. 블록 조각들은 운반차에 실린 채 드넓은 조선소 내를 휘저었다. 도크(선박 건조 공간)와 안벽(선박을 해안에 접안시키도록 만든 구조물)에는 LNG 운반·추진선와 스크러버(탈황장치)를 설치한 선박 등 친환경 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흡사 미래·친환경 선박의 진열장 같았다.

‘수주 절벽’에서 탈출한 조선업계가 ‘인력 절벽’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조선산업 호황기 당시 영암·거제·울산 등지에 있던 용접·배관·도장 등 숙련 기술자 대부분은 조선소를 떠났다. 젊은 층은 사양산업이라며 등을 돌리고 외국인들은 코로나19 탓에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불황을 뚫고 ‘물이 들어왔는데 노 저을 인력’이 없는 것.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도 조선사들의 부담을 키우는 모습이다.

‘친환경 선박’ 진열장된 영암 앞바다
분명 국내 조선업 경기는 바닥을 치고 다시 솟아오르고 있다. 방점은 탈탄소 흐름 속 친환경 선박에 찍혀 있다. 특히 전남 영암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산하 현대삼호중공업조선소는 친환경 선박의 산실로 불린다. 최근 수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시스템을 장착한 대형 탱커, 컨테이너선, 벌커 등을 세계최초로 건조한 것이 바로 이곳이다.

삼호중공업의 LNG 연료탱크 기술은 극저온 영하 163도 환경을 견뎌낸다. 우수한 강도와 충격을 견딜 수 있는 '9% 니켈강'을 사용해 LNG 추진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적용했고 LNG 추진선에 필요한 LNG 연료탱크와 연료공급시스템, 이중연료엔진 등의 배치·설계를 최적화해 안전성과 컨테이너 적재 효율성을 높였다.

특히 삼호중공업의 강점은 육상건조방식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육상건조공법은 맨땅에서 선박을 건조한 다음, 배를 해상 플로팅도크로 이동시킨 후, 진수시켜 선박을 건조하는 방식이다. 삼호중공업 관계자는 "육상건조공법은 독 시설이 필요없이 육상에서 건조가 가능해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다"며 "삼호중공업은 최대 4만1000톤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자가구동방식 운반차를 활용해 연간 LNG선 8척 이상을 건조할 수 있는 생산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삼호중공업처럼 우수한 기술력이 경쟁력인 조선사들은 고급 기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숙련공이 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육상건조방식이 강점인 삼호중공업처럼 조선소 건조 인력은 특히 확충이 시급한 부분이다.

올해 조선사와 협력업체를 포함해 생산 분야 인력은 최대 8000여명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분기별로 보면 올해 1분기 3649명, 2분기 5828명, 3분기 8280명, 4분기 7513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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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협력사 업체 대표는 "인력난으로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수주 물량이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넘어가면서"며 "영암이나 거제 등이 미국의 러스트벨트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전했다. 러스트벨트는 미국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등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였으나 제조업의 사양화 등으로 불황을 맞은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에 위치한 조선 협력사 대아산업의 황주석 사장은 "용접공 일당이 10년전 11만원에서 현재 18만원까지 올라갔다"며 "수주 행진이 이어지던 지난해 연말부터 두세달 사이에만 3만원이나 뛰었지만 인력 찾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역대급 수주 행진 속 업계 '존속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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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내 기술교육원에서 연수생이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삼호중공업 뿐만 아니라 현재 대형 조선사들과 협력사들의 산업 생태계가 인력난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선박 건조 과정은 ‘블록 쌓기’와 같다.

여러 블록들을 용접해 이어 붙여가며 선박의 형태를 만든다. 철판을 블록으로 만들어 탑재하고, 도장 및 배관 작업까지 마치면 선박을 바다에 띄울 수 있게 된다. 블록 제조를 담당하던 조선 협력사들이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같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조선사들도 수주 기한을 못 맞추게 되거나 수주를 반려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탁 전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전무는 "5~6년 전부터 일감이 떨어지자 지역에서 일을 하던 숙련공들이 건설·반도체 등 다른 산업으로 옮겨갔다"며 "조선 관련 노동이 고강도인 데다 다른 산업의 임금 수준도 나쁘지 않다보니 다시 조선업으로 돌아오지 않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쿼터 확대와 조선소 인근 정주여건 개선 등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제조업 살리기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훈 경남대학교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조선업은 연장 근무가 많은 업종인데 주 52시간제도 시행 등으로 인력난이 더 심화된 측면이 있다"며 "한시적이나 탄력적으로 주 52시간을 조선업에 풀어주거나 정주여건 개선 등 인센티브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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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에서 삼호중공업 특유의 육상건조방식으로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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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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