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집권 시 적폐청산 수사’ 발언에 文 분노 표출하며 친문 결집 유도
친문, 文 퇴임 후 안전보장 위해 李 지지… 대선 끝나도 文 영향력 지속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집권 시 前 정부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며 각을 세웠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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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고 계시지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에게 간절한 호소를 드리고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을 잘 지킬 수 있는 후보는 역시 이 후보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어떤 형태로든 수사를 통해 위해를 가하지 않겠느냐?”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대통령 선거를 1달 앞둔 시점인 2월 8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선거의 향방에 가장 민감한 곳이 여의도 국회다. 대선을 채 1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열세를 인정하고 있었다. “윤 후보 쪽에서 초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 한 못 뒤집는다”는 비관론까지 들렸다. 심지어 “이 후보 가족과 관련된 추가 의혹을 국민의힘이 터뜨릴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막고 있다”는 소문도 배회한다.
이럴수록 이 후보가 비빌 언덕은 친문 지지층의 결집이다. 2월 1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1%로 나타났다. 2월 13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43.2%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후보 지지율은 30% 후반대에 갇혀 있었다. 이런 구도에 균열을 가하는 사건이 윤 후보의 2월 9일 인터뷰였다. 윤 후보는 “문 정부 적폐청산 수사” 발언을 꺼냈고, 그다음 날인 10일 문 대통령은 윤 후보에게 사과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문 대통령과 윤 후보의 정면충돌 이전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은 이 후보에게 투표하겠지만, 썩 내키진 않을 것’이 정치권의 보편적 시각이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정치인 문재인은 2007년 정권을 빼앗기고 난 뒤 10년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며 “같은 당에서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인사도 “문 대통령을 향한 이 후보의 충성심, 이 후보를 향한 문 대통령의 애정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그동안 해왔던 정책을 계승하려는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대통령은 생각하지 않겠나”라며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다 원점으로 돌려놓겠다고 하는 후보(윤석열)가 당선되는 시나리오를 문 대통령이 생각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문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을 고려할 때, 아무리 이 후보가 성에 차지 않더라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무척 내향적이다. 어지간해선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오래간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은 청와대 수석, 장관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장(長), 이사, 감사 등 꽤 많다. 대통령은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정권 말기까지 자신을 위해 뛴 사람들을 챙겼다. 만약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그들은 다 옷을 벗어야 한다. 그들을 위한 부채의식 차원에서라도 대통령은 민주당의 승리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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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2021년 10월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둘의 관계는 전략적 공생 관계에 가깝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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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민주당에서 문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과 이 후보에 대한 호감이 정비례하진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한 친문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 과정을 보라. 이 후보는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대놓고 ‘잘못됐다’고 비토하고 있다. 이러면 국민의힘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심지어 “이런 식이라면 패색이 짙어질수록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의 실정을 더 거세게 공격할 수도 있는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월 10일을 기점으로 부동산을 둘러싼 정책 노선 갈등은 타협할 공간이 커지고 있다. 가급적 부동산 문제에 관해 답변을 회피하던 문 대통령이 직접 “정책에 있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 점이 가장 아픈 일이 됐다”며 “주택 공급의 대규모 확대를 더 일찍 서둘러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오류를 시인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부동산 정책에 관해서만큼은 ‘나를 밟고 가라’는 시그널을 이 후보에게 보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40%대에 달하는 철옹성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여론조사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 중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대로 보면 40대를 비롯해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지역으로 보면 호남과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 문 대통령의 코어 지지층”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는 이 지지층을 최대한 흡수하려는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럴수록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50% 이상의 유권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게 된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특히 스윙보터인 중도층의 지지를 놓치고 있는 대목이 뼈아프다.
이 후보는 호남 표를 더 끌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월 8일 이 전 대표는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전 대표는 선대위 상임고문,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으며 사실상 외곽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낙연 효과’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짙다. “선거는 타이밍인데 시기적으로 합류가 너무 늦었다”고 보는 것이다.
화학적 결합이 느슨한 것도 이재명 캠프의 불안요소다. 민주당은 ‘원팀’을 외치고 있고, 실제로 대선 승리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다수 의원이 품고 있는 결연함의 강도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를 두고 “전략적 제휴”라고 표현했다. 야당을 하게 되면 어떤 신세가 될지 뻔히 아니까 이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2017년 대선처럼 필사적으로 임해야 할 필연성을 못 느끼는 정서가 담긴 것이다.
이런 기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이벤트가 1월 24일 발표된 소위 ‘7인회’의 백의종군 선언이었다. 다수의 일반 국민에게는 뜬금없는 발표처럼 여겨졌지만, 들여다보면 원팀으로 섞이지 못한 민주당의 현실을 노출한 장면이었다. 7인회는 김영진 민주당 사무총장을 포함해 정성호·김병욱·임종성·문진석·김남국 의원과 이규민 전 의원을 지칭한다. 이들은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이들은 “(오늘 회견은) 이 후보와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며 “임명직을 하지 않겠다. 후보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김종민 의원 등의 ‘586 용퇴론’과 마찬가지로 7인회의 임명직 포기 선언도 당내에서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소수파인 친이재명계의 독주를 바라보며 친문계 등 민주당 주류 의원들 사이에서 반감이 적지 않았다는 정황증거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선 패배 이후의 정국 시나리오를 그리는 구상도 조심스럽지만 은근하게 흘러다니고 있다. “대선에서 패한다면 6월 1일 지자체 선거도 필패라고 봐야 한다. 이러면 2021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부터 시작해서 3연패가 된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에 맞춰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그러면 유권자의 (국민의힘) 견제심리가 발동하며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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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대선 이후 시나리오 구상도
2월 8일 국민의힘 유튜브에 출연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 주위의 ‘거대한 집단’을 겨냥했다. / 사진:국민의힘 유튜브 ‘오른소리’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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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열성적으로 이 후보를 돕는 세력 중 하나가 문 대통령 직계 그룹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현재 청와대에는 냉정하게 말해서 대선에 도움이 안 되는 관리형만 남아 있다”며 “선거에 필요한 정치·정무·조직 역량을 갖춘 ‘선수’들은 전부 이 후보 캠프로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그러면 이 후보가 대권을 잡아도 문 대통령은 ‘안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이재명은 못 믿어도 민주당은 믿을 수 있다”고 답했다. 친문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민주당이 와해하지 않고 건재하다면, 이재명 후보가 권력의 정점을 찍더라도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게다가 이 후보의 정치적 후원자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 관계에 가깝다. 복수의 민주당 인사는 “두 분은 보수 진영의 집권을 저지하는 수단으로서 이재명의 당선을 정치 인생의 피날레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 이후 문 대통령의 입장은 한층 선명해졌다. 차재원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박연차 사건’을 파헤치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칼날을 휘둘렀다. 그때 수사했던 사람이 검사 윤석열이다. (그 파장을 직시했던)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더욱 손을 안 대려고 하지 않겠나”라고 예측했다. 실제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며 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하자 윤 후보 측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부당한 선거 개입”이라고 반발하면서도 “윤 후보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고 강조하며 극한 대립을 피하려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에 “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고 윤 후보를 변호했다.
윤 후보가 문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윤 후보 부인인 김건희씨 녹취록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씨가 문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폄하하는 ‘스모킹건’은 없었다. “우리 남편(윤 후보) 노무현 연설을 외울 정도다. 진짜 누구보다도 정말 좋아했다. 문재인하고 너무 다르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가 창업주라는 그런 기질이 있고, 대장 기질이 있고, 책임지려는 기질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 기질이 너무 강하다. 참모 기질이 강해서 조금 대통령 하기는 그렇다”는 김씨의 발언은 오히려 친노 유권자들에게 호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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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수세 몰릴수록 文 영향력 상승
윤 후보도 2월 8일 국민의힘 유튜브 [오른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검사로서 오랫동안 문 대통령을 지켜봤을 때 ‘참 정직한 분’이라는 생각을 해왔다”고 평했다. 비판의 칼날도 “문 대통령을 둘러싼 거대한 집단”을 겨냥했을 뿐이다. 적폐청산 발언도 “내로남불의 전형”이자 “명분이나 헌법이나 상식 없이 자기들의 이익에 절대 복종하는” ‘대통령 주위의 거대한 집단’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측근을 맹목적일 정도로 감싸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발언을 용납할 수 없는 도전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어도 못 본 척했단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 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적폐청산을 할 것인지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윤 후보가 아무리 안 건드리고 싶어도 칼을 대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국회에 180석의 민주당이 있는 한, 거의 아무것도 뜻대로 할 수 없다”며 “이 구도를 깨려면 강하게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어서 국민 여론을 전환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 그 범위와 강도가 어디까지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대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차 교수는 “만약 조국과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아니었다면, 윤 후보를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준 문 대통령과의 관계가 이렇게 각을 세우는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문 대통령의 청와대 측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인 문준용씨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역대 정부 중 측근 관련 게이트가 가장 없었다”며 “청렴성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하지만, 작심하고 털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민주당이 대선에서 크게 패할수록 문 대통령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치된 예측이다. 익명의 민주당 인사는 “대선에서 진다면 민주당은 구심점이 사라진다. 이재명 후보는 다음 스텝이 없어질 것이고, 이낙연 전 대표는 70살이 넘었다. 친문 중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감옥에 있다”며 “민주당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고, 친문계는 전언 정치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령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친문의 경로는 비슷할 것이다. 다시 말해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아무리 잊히고 싶어도 세상이 가만두지 않을 상황이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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