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위는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올해 첫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정호원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회의 종료 후 "(개정안은) 결정이 유보됐다"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소위원회를 꾸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위원회는 조만간 태스크포스(TF)격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구성원이나 회의 일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며 강력 반발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특히 적극적으로 반대 여론 조성에 앞장섰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소송 제기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과 소송 제기 결정권을 시민단체와 노조의 영향력이 큰 수책위로 이관하는 것이다. 수책위는 위원장 1명과 위원 8명 총 9명으로 구성되며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3명씩을 추천한다.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투자 전문가 조직인 기금운용본부 대신 노동계와 시민단체 입김이 센 수책위가 소송 권한을 갖는 것이 해외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며, 국민의 손실로 돌아온다고 우려해왔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최광 전 복지부 장관도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최 전 장관은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위 아래에 수책위가 있고, 수책위 소속 상근전문위원을 보건부가 임명하는 구조"라며 "보건부가 대표소송의 선수로 뛰는 체제가 완벽히 마련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와 전문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국민연금에서는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까지 신중한 접근을 요청하면서다. 정부 내에서도 반발이 이어지면서 결국 복지부와 국민연금에서는 다양한 여론을 수용하겠다면서 한발 물러섰다.
다만 논란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는 "수책위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권한 이관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강조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라 중장기 과제로라도 꼭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통상 기금위 일정을 감안하면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다음 회의는 아무리 빨라도 다음 달 9일 대선 이후에나 개최할 수 있다.
앞서 이날 회의에는 당연직 기금위원인 이억원 기재부 제 1차관과 박진규 산업부 제 1차관,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 등이 불참해 정부가 정족수 미달을 의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각 부처는 실장급 인사가 대참했다.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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