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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취재파일] 문 대통령 '60년간 원전 활용' 다시 꺼내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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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원전 운영되는 60여 년 동안은 충분히 활용"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를 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국내 전력생산에 쓰이는 천연가스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 세계 천연가스의 4분의 1이 매장된 걸로 추정되는 러시아, 또 이를 유럽으로 옮기는 가장 큰 파이프라인이 설치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국내 수급에도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일 오후 청와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선 주로 원전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발언이 소개됐습니다. 보도자료 중 관련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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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 (사진=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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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이 지닌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며,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다만 적절한 가동률을 유지하면서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습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는 포항과 경주의 지진, 공극 발생, 국내 자립기술 적용 등에 따라 건설이 지연되었는데, 그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가 충분하게 이루어진 만큼,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문 정부가 기존 원전 정책을 뒤집었다는 취지로 논평을 내고 헤드라인을 썼습니다. <탈원전 외치다 "원전이 주력"…말 바꾼 文 대통령에 野 "어안 벙벙"> <임기 끝나서야 탈원전 오류 시인> <우크라發 에너지 위기에…탈원전 꺾은 文> 등입니다.

문 정부 원전 정책 정말 '꺾었나'



문 대통령이 지금 갑자기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문 정부가 기존 원전 정책을 정말로 '꺾은' 게 맞는지, 비판의 각도가 정확한지는 먼저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당장 탈원전하려다 원전을 60여 년 더 운영하기로 새롭게 방침을 내놓았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2084년이라는 시기는 이미 임기 초부터 기사화됐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문 정부의 원전 정책은 한 마디로 '원전을 더 짓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건설되는 신고리 5, 6호기의 설계 수명이 2084년에 끝나면 '원전 제로 시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이 공약은 원전에 찬성하는 진영만이 아니라 반대하는 진영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환경단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은 사실은 원전 '자연사' 정책에 다름 아닌 일정"이라며 원전 제로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원전이 주력 기저 전원"이란 말을 앞세워 기존 정책을 포기한 것이란 주장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2084년까지 원전이 존재하는 기간에는 활용한다'는 전제조건을 뒤로 숨겼기 때문에 균형 있는 비판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기저 전원'이란 '생산단가가 저렴해 항상 가동하는 발전소'라는 용어로, 말하자면 '주요 시설'처럼 가치가 부여된 말이 아닙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천연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원전과 석탄 발전 등 대체 연료를 더 많이 투입하겠다는 방침입니다. 2020년 기준 국내 전력생산 비중은 석탄 35.3%, 원전 28.8%, LNG 27.1, 신재생 6.0%인데, 이 비율을 조정하겠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석탄 발전 비중을 높이겠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석탄 발전 중심으로 전환됐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문 대통령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면서 원전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는 뜻을 거듭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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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도 없는데 거듭 강조…왜?



요약하자면 기존에 해왔던 말을 한 번 더 반복한 겁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기존 원전 정책을 뒤집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제 관심은 같은 이야기를 왜 '지금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날 회의는 원래 비공개 내부 보고 회의로 기자들에게는 일정이 공유되지 않았고, 보도자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회의였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마치 원전을 모두 폐쇄했다는 시각이 있어 보다 정확하게 설명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탈 원전'이라는 명칭 때문에 생기는 오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에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문 대통령이 크게 답답해했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특정 정치 진영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전쟁이 아니더라도 예정돼 있던 전기세 인상을 이번 정부의 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데 대한 억울함도 컸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담당 부처는 '원전 수사' 경험 등으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섰을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만 원전 문제뿐 아닙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이번 정부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적극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이른바 '적폐 수사' 발언에 대해 강력한 분노와 함께 사과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과 홍보에도 적극적입니다. 22일에는 정상외교 5년 성과 점검 보도자료를 내놨고 24일엔 군산으로 가서 군산 조선소 재가동 협약 행사에 임석했으며, 25일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20조 2천억 원을 넘어 재정상태가 양호해졌다고 직접 알리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의 언론 인터뷰도 잦아졌습니다.

선거 국면이라도 억울함이 있으면 해명할 수 있고, 성과가 있다면 홍보할 수 있습니다. 대선 후보 말고는 무조건 침묵하라는 게 선거법 취지는 아닐 겁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대통령의 발언이 잦아지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과 홍보도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공(功)과 더불어 과(過)도 함께 이야기하고 공을 국민에게 돌려야 '공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높이면 세상이 낮추려 하고, 스스로 낮추면 세상이 높여주는 게 사람들 마음 생김새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대선 일정이 연초로 당겨진 탓에 마지막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못한 건 그래서 아쉽습니다.
문준모 기자(moonj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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