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금융고립’ 러, 달러 동났다…비트코인 사재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루블화·유로화와 미국 달러 환율이 표시된 전광판 앞을 한 러시아인이 지나가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여파로 달러가 고갈되는 등 러시아 금융시장은 극도로 혼란스럽다. [타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 몸값이 하루 새 15% 폭등했다.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금융제재로 고립무원에 빠진 러시아인들이 ‘비트코인 사재기’에 나서면서다.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일 오후 3시30분 비트코인 가격은 4만3289달러(약 5214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하루 사이 14.56% 뛰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3만4750달러)과 비교하면 5일 만에 25%나 급등했다.

비트코인 값이 급등한 건 서방의 강력한 금융제재에 돈줄이 막힌 러시아인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몰린 영향이다. 1일 암호화폐 데이터 업체 카이코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러시아 루블을 통한 비트코인 거래량은 지난달 25일 15억 루블(약 19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많다.

뉴욕포스트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루블화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러시아인들이 급하게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금융 시스템보다 비트코인을 신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 우크라이나인들이 암호화폐 매집에 합류한 것 또한 단기간 가격 급상승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중앙일보

비트코인 가격 추이. 그래픽=기명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러시아 금융시장은 혼란 그 자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여파로 루블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며 하락세(환율 상승)를 이어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일 오후 4시 30분(현지시간 오전 8시 30분) 루블화 값은 달러당 100~110루블 사이에서 거래 중이다. 연초(달러당 74루블)와 비교하면 35% 넘게 하락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 주식 시장은 이틀 연속 문을 닫았다. 러시아 당국은 주가 급락 등의 충격을 우려해 지난달 28일에 이어 이날에도 주식 시장을 휴장했다. 자산 시장에 미칠 충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전날 러시아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9.5%에서 20%로 끌어올렸지만, 루블화 가치 방어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고갈돼 가는 미 달러도 비트코인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와의 거래도 차단하는 추가 금융제재를 내놨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주요 금융 시장에서 보유한 달러 자산까지 묶은(동결)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 제재로 러시아의 자산 보유액 가운데 절반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자체 발표상 지난해 6월 기준 러시아의 달러 자산은 1000억 달러다.

서방의 금융제재에 맞서는 러시아 정부의 조치도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일부터 러시아 거주자에게 달러 등 외화의 해외 송금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달러가 동날 위기에 놓이자 아예 달러의 해외 유출을 틀어막은 것이다.

또 무역업자에겐 지난 1월부터 해외에서 확보한 외화 수익의 80%를 팔라고 명령했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오선근 재러한국경제인협회 사무국장은 “기업 입장에선 루블화 폭락에 대비해 달러를 보유하고 싶은데 (외화 수입 강제 매각 소식에) 충격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노아의 방주’가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미국 등 서방이 암호화폐 시장 옥죄기에 나설 수 있어서다. 미국 정부는 이미 경고장을 날렸다. 러시아가 암호화폐로 전쟁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코인 거래소도 경제 제재 방안에 포함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당분간 암호화폐 시장의 문은 닫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계 자본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서방의 제재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바이낸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수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며 “러시아인의 계좌를 일방적으로 동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암호화폐 시장을 제도적으로 단기간에 통제하긴 쉽지 않지만,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갈등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