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붙잡아야 하는데 '절친' 푸틴 탓에 '발목'
미국에 맞서 중국이 표방한 유엔 중심 다자주의, 주권 및 영토 존중 등을 가장 가까운 우방인 러시아가 유린한 상황에서 외교의 공간을 넓히기 어렵게 되자 우선 '집토끼 지키기'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또 중국은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유럽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길 희망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 미묘한 '줄타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 양상이다.
화상 회담서 손 흔들며 인사하는 미중 정상 |
◇ 반미·친러·친북…선명해진 중국의 진영논리
왕 부장의 답변에는 중국의 진영 논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은 강도 높게 비판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협력을 약속한 것이다.
반면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풍운이 아무리 험악하더라도 중·러는 전략적 관계를 유지해 신시대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입장을 거의 전적으로 두둔했다.
신냉전의 대치선이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입장은 중국 외교의 '집토끼 지키기'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최대 연례 정치 일정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국 국내 청중을 의식하는 측면도 작지 않아 보였다.
푸틴 "우크라와 고위급 협상 희망"·시진핑 "협상 지지" |
◇ 유럽은 붙잡고 싶지만 전쟁에 미-유럽 결속 강화 딜레마
이런 상황에서 왕 부장의 유럽에 관한 발언에 중국 외교의 딜레마가 묻어났다.
이날 왕 부장은 유럽을 향해 쓴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전략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중-유럽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며 "유럽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안정적이고 견고해서 일시적인 사건에 의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럽이 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대 중국 인식을 형성해 실무적이고 긍정적인 대 중국 정책을 시행하고, 함께 신냉전에 반대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중국이 사실상 러시아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 다수의 인식인지라 유럽에 대한 중국의 '구애'가 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공동으로 맞설 파트너로 군사, 정치, 외교 면에서 중요한 러시아도 잡고 싶고, 경제적 실익이 다수 걸려 있는 유럽과도 척지고 싶지 않은 것이 중국의 속내이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중국 외교의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형국이다.
또 왕 부장은 대유럽 관계를 언급하면서 다자주의와 신냉전 반대를 강조하는 자국 외교의 기본 입장을 재천명했지만 중국과 가장 친한 러시아가 다자주의의 기본 틀에 도전하며 신냉전을 조장한 상황에서 그 메시지에 힘이 실리긴 어려워 보였다.
EU 외교ㆍ안보 대표와 화상 회의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
◇ 한·아세안에는 우호 메시지, 일본에는 쓴소리
왕 부장의 회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대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선 한국과 아세안에 대해선 우호적인 메시지를 낸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한 대목이다.
왕 부장은 한중관계에 대해 "우리는 올해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국과 우호의 전통을 살리고 호혜적 협력을 심화해 공동 발전을 한층 더 실현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아세안과 관련해서는 중국과 아세안이 "가장 활력 있고 잠재력 있는 지역 협력의 모범을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더욱 긴밀한 중국-아세안 운명공동체 형성"을 강조했다.
반면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일본에 대해서는 "현재 중일 관계는 여전히 일련의 이견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특히 일본 국내에 늘 일부 사람이 중국의 쾌속 발전과 중일 관계의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왕 부장은 중일 간 합의와 약속 준수 등 '3가지 충고'를 했다.
미국과의 전략경쟁과 신냉전 심화 속에 미국의 대중 압박 기조에 동참하느냐, 거리를 두느냐를 기준으로 한 입장 표명으로 해석됐다.
우선 9일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한국에는 유화적 메시지를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기조가 차기 정부에서도 유지되길 바라는 메시지가 읽혔다.
반면 일본에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자민당 내 대중 강경파의 목소리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견제의 뜻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쿼드 외무회담 앞두고 회동한 미·일 외교수장 |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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