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왼쪽)이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이명박정부 국정운용에 관한 합동워크숍`에 참석해 이야기하던 모습.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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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오륀지’ 이러니까 ‘아 오륀지!’ 이러면서 가져오더라고요”
14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많은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장면.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의 ‘오륀지’ 발언이다. 이 전 총장은 그 뒤 언론 인터뷰에서 “큰 오해였다, 반성을 많이 했다”고 했지만 ‘오륀쥐’ 발언은 ‘영어 공용화’ 논란까지 번지며 이명박 정부 초기 큰 부담을 줬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이 9일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가 이르면 내주 설치된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11일 취재진을 만나 “인수위는 7개 분과로 나뉘어 운영되고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 특위와 코로나19,청와대 개혁 TF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사무실과 당선인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금융감독원과 금융연수원에 마련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대리를 접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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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의 탄핵으로 인수위 없이 대통령에 바로 취임했다. 그래서 인수위가 운영되는 건 9년 만이다. ‘미리 보는 차기 정부’라 불리는 인수위의 특징은 무엇이고 역대 인수위는 어떻게 운영됐을까. 과거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에게도 조언을 부탁했다.
인수위는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이 공존하는 두 달간의 ‘권력교체 과도기’에 운영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윤 당선인 취임이 5월 10일이라, 인수위의 실질적 운영 기간도 그때까지다. 대통령 취임 후 한 달가량은 백서를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조직 구성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공무원들은 이번 처럼 정권 교체 후 들어서는 새 정부의 인수위를 ‘점령군’이라 말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을 맡았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새로운 정부의 5년을 두 달 만에 준비하는 게 인수위”라며 “굉장히 짧지만 굉장히 거대한 프로젝트다. 점령군이란 인상을 주면 정부간 인수인계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시작된 건 첫 문민정부가 들어선 김영삼 대통령 때다. 하지만 한국행정연구원의 ‘정부인수위원회 역할과 기능에 관한 연구: ’1993~2017년’에 따르면 인수위의 실질적 기능이 수행된 건 김대중 정부 인수위부터였다. 헌정 사상 첫 민주 정부의 정권 교체와 IMF 사태까지 겹쳐 인수위의 역할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법적으로 인수위는 위원장 1인과 부위원장 1인 및 24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자문위원과 정부 파견을 받을 수 있어 전체 규모는 보통 150~200명 정도다. '인수위 26명’에 포함된 인사들은 다음 정부에서 주요 포스트를 맡는 경우가 대다수다. 인수위를 ‘섀도 캐비닛’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인수위원이 그대로 정부에 입각해야 국정 혼란이 줄어든다”고 했다.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운데 왼쪽)가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임채정 인수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함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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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종찬 당시 국민회의부총재는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고,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장이었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비록 낙마했지만, 초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인수위의 부위원장도 대부분 내각에 진출했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 부위원장이었던 김진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교육부 장관까지 꿰찼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1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도시락 오찬'을 마치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의 배웅을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안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유력한 인수위원장 후보로 꼽힌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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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당선인이 인수위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민 참여를 강조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국정운영 관련 전국 순회 토론을 했다.
이명박 인수위 때는 ‘오륀지’ 논란과 함께 ‘대불공단 전봇대’ 사건도 화제가 됐다. 이명박 당선인이 인수위 간사회의에 참석해 “지난해 대불공단에 갔더니 대형트럭이 커브를 트는데 전봇대가 있어서 안됐다”고 말한 뒤 이 전봇대는 이틀 만에 뽑혔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슬로건으로 당선됐던 만큼 이명박 인수위는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웠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이 “인수위는 기존의 정책이나 당선자의 공약에 찬반을 강요하거나, 호통치고 반성문 같은 것을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점령군 행세를 하지 말란 말이었다.
2012년 12월 당시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 윤창중 수석대변인 인수위 위원 발표와 관련해 박근혜 당선인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명단이 든 봉투를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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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달리 인수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삼성동 자택에서 보고를 받아 ‘자택 정치’란 말이 나왔다. 친박계라 불린 의원들도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거의 모를 정도였다. 당시 인수위 명단을 발표하던 윤창중 인수위 수석대변인이 기자회견 전 “밀봉을 해왔기 때문에 저도 이 자리에서 (봉투를 뜯어보고) 발표를 드렸다”고 말해 ‘봉투 인사’란 말까지 나왔다.
이런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집권 후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인수위 국정기획조정 간사를 맡았던 유민봉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인수위 입단속이 철저해 언론이 답답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인수위 내부적으론 당선인의 공약 점검을 탄탄히 했고, 대통령 취임 뒤 무리 없이 국정 과제로 이어졌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후 바로 취임해 인수위는 없었지만, 이에 준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뒀다. 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전 의원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노타이로 차림으로 문 대통령에게 국정과제를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
2017년 7월 당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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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모두 “인수위의 두 달이 차기 정부의 성패를 가른다”고 입을 모았다. 윤 전 장관은 “대선 과정의 기여도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인수위는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을 모아 골라 써야 한다”며 “두 달 간 단 하루도 로스(loss)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을 맡았던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공약은 지켜야 하지만 집착해선 안 된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정해나가는 것도 용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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