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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타국 위성 '볼모' 삼는 러시아…"누리호 빨리 완성하자"[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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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제 제재 반발해 원웹 위성 발사 거부

올해~내년, 한국 위성 3기 등 수백개 위성 발사 일정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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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러시아 연방우주국(ROSCOSMOS)이 소유즈 로켓에 새겨진 태극기 등 다른 나라 국기들을 가리고 있다. 사진 출처=ROS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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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간 전쟁으로 국제 우주 개발 협력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가 국제 제재를 핑계로 이미 계약된 타국의 위성 발사를 거부하는 등 '볼모'를 삼고 나서고 있다. 이미 올해 내에 러시아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발사될 예정이었던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위성 수십 기가 발을 묶인 상태다. 한국이 독자적 우주 개발을 위한 발사체 완성에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뉴스, 국제학술지 네이처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우주 개발 협력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 등 14개국과 함께 국제우주정거장(ISS)을 건설한 후 인력ㆍ화물 수송과 관리 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소유즈, 앙가라 등 신뢰도가 증명된 발사체를 이용해 국제 위성 발사체 시장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던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제 사회의 제재에 반발해 이같은 각국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서면서 판이 깨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 또는 내년까지 러시아에게 위성 발사를 위탁해 놓은 나라들이다. 특히 골치를 앓는 것은 영국의 위성인터넷 스타트업인 원웹(OneWeb)이다. 이 업체는 지난 4일 카자흐스탄 소재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소유즈 로켓에 위성인터넷용 위성 36기를 탑재해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취소됐다. 러시아 연방우주국(ROSCOSMOS)은 우크라 침공 후 국제 제재가 가해지자 영국 정부에 원웹 지분을 매각하고 군사용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조건을 제시했다가 거절당한 후 지난 2일 원웹 위성 발사 거부 방침을 밝혔다. 원웹은 러시아 발사체를 이용해 지난해까지 위성 428기를 쏘아 올렸고 올해 220기를 추가 발사해 시범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었다. 러시아의 발사 거부로 이같은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다. 원웹 측은 지난 3일 러시아 발사체를 이용한 위성 발사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미국의 스페이스X나 유럽우주청(ESA)의 아리안 로켓, 인도 또는 일본 우주발사체 등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타격이 크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갈릴레오 위성항법시스템 위성 4기, 레이더 관측 위성 센티널1C호, 유클리드 우주망원경, 지구 관측 위성 어스케어호 등을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에 실어 발사하기로 계약된 상태지만 사실상 취소된 상태다.

한국도 피해 예상국 명단에 포함됐다. 한국은 차세대중형위성2호(CAS5002)를 올 하반기에 소유즈2-1A 발사체에 실어 궤도로 보낼 예정이지만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연방우주국장은 지난 4일 소유즈 로켓 외벽에 그려져 있는 태극기 등 외국 국기 위에 종이를 덧붙여 가려버리는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또 올해 내 러시아 소유즈 로켓 혹은 앙가라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할 예정이었던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날씨 관측 위성 도요샛(SNIPE), 다목적 중형 위성 아리랑 6호의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밖에 스웨덴의 대기 관측 위성 1기, 일본 민간 위성 회사 악셀스페이스ㆍ싱스펙티브의 위성 5기, 유럽 민간 위성 회사 Eumetsat의 기상위성 1기 등의 발사도 올해에서 2024년까지 러시아 발사체와 계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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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측은 지난 8일 올해 예정된 발사체들의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되 원웹 등 서방 국가들의 위성 대신 자국 기업들의 위성들을 무료로 궤도에 올려 주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로고진 국장은 "연말까지 십여개의 러시아 민간 통신ㆍ기상ㆍ지구관측ㆍ정밀 감시 위성이 발사될 예정이며 (발사될 계획이었던) 소유즈 로켓은 원웹 위성 대신에 이들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사체 시장에서 러시아의 갑작스런 이탈은 큰 충격을 줄 전망이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도 이미 배제돼 있는 상태에서 유럽, 인도, 일본은 자체 발사만으로도 벅찬 상태다. 재활용 로켓을 보유한 미국의 스페이스X가 유일한 대안이긴 하지만 이조차 향후 1년반의 발사 일정이 꽉찬 상태다. 위성 발사를 위한 발사체를 준비하기 위해선 최소 1년 반~2년이 걸린다. 발사를 목전에 뒀던 세계 각국들의 입장에선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앞날이 불안하다. 로고진 국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서방의 제재에 반발해 ISS의 추락을 경고했다. 그는 SNS를 통해 "ISS의 러시아 구역이 영향을 받아 500t의 구조물이 바다나 육지로 추락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 구역은 우주 쓰레기를 피하기 위해 연평균 11번 ISS 궤도를 수정한다. 추락 지점이 러시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말에도 "ISS에서 이뤄지던 협력 관계를 파괴할 것인가. 새로운 미국의 제재는 우주정거장이 통제되지 않는 형태로 지구로 돌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ISS는 통상 미국인 4명, 러시아인 2명, 유럽인 1명 등의 우주인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평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각종 제재를 가했지만 ISS 관련 협력은 유지해왔다. 이와 관련 네이처는 14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아직까지 ISS운영과 연구 등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며, 우주인들이 ISS 내에서 우크라 전쟁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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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귀환할 예정인 미국인 우주인 1명도 러시아 우주인 2명과 함께 예정대로 소유즈 로켓에 탑승해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조엘 몬탈바노 NASA 국제우주정거장프로그램 국장은 "미국인 우주인은 소유즈를 타고 귀환할 것이 확실하다"면서 "러시아 측과 소통을 하고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한 혼란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또 그동안 미국 기업 ULA와 노스럽그루먼 등의 업체에 자국 로켓 엔진을 더 이상 공급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잉과 록히드마틴의 합작사인 ULA는 NASA와 국방부에 로켓 기술을, 노스럽그루먼은 ISS에 화물 운송 로켓을 각각 고급하는 회사다.

한편 국내에선 오는 6월15일 2차 시험 발사를 앞둔 국산 발사체 '누리호'의 완성과 추가 개발을 앞당겨 조기에 독자적인 우주 개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누리호는 현재 1.5t급 위성을 저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번 2차 발사때 시험 위성을 탑재해 위성 궤도 진입 능력을 테스트한다. 성공할 경우 2023년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수송할 계획이다. 그러나 2030년 달 착륙 탐사선 발사 때도 독자 발사체를 사용하려면 더 강한 추진력과 화물 탑재 능력을 갖추는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국산 위성 중 최상위급인 천리안 위성만 해도 3t이 넘어 현재 누리호의 성능으로는 발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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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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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우주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제작된 위성들을 기존 일정대로 발사하는 게 가장 좋은 길인데 상황이 좀 어렵다"면서 "국제 제재와 전쟁 상황을 잘 살펴 보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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