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공조 파트너' 러시아와 관계-제재 리스크 사이 고민 커질 듯
미중 정상 영상 통화 |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대(對) 러시아 지원을 둘러싼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18일 열린 미중 정상의 영상통화는 군사물자 등을 러시아에 지원할 경우 중국도 제재한다는 입장을 최고위급에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앞서 미측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열린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 회동 때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이나 제재를 위반하는 다른 지원을 할 경우 중대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물질적으로 지원할 경우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후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전 세계적인 후과'는 미국과 함께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움직임과 맞물려 관심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EU 고위 당국자는 "중국이 러시아의 (군사지원) 요청을 받아들일 시 EU는 중국 상대로 무역 장벽을 세워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과의 교역량을 감안할 때 대 중국 무역 관련 제재는 '고육책'임에 틀림없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이 근래 보기 드문 수준의 긴밀한 공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 베일에 가려진 미국의 '레드라인'과 검토 중인 대 중국 제재
미중 정상 통화 후 양국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에 어느 쪽으로든 '확답'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무차별적 대 러시아 제재가 일반 민중의 피해로 연결되며, 더 심해지면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대러 제재에 반대하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또 중국은 정상 통화 전후로 외교부 대변인 발언과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 미국의 대 중국 제재가 나오면 중국도 반격할 것임을 경고했다.
현재까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제시한 대 러시아 지원 관련 '레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그 선을 넘었을 때 미국이 부과할 제재의 내용은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측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추정의 영역이지만 중국의 대 러시아 군사 분야 지원이 레드라인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제 지원 영역에서는 어디까지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는지 모호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난해 무역 규모는 1천468억7천만 달러(약 178조원)로, 중국은 12년 연속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무기를 제외한 정상적인 중러간 거래까지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 원유 등 에너지 분야에서 유럽도 현재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을 단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러시아 사이의 에너지 거래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리밍장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가 1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팡중잉 중국해양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러가 '무제한 협력'을 선언(2월 4일 중러 정상회담)한 '사실상의 동맹'인데, 제재와 관련한 바이든의 모호한 발언은 그 무제한 협력에 '한계'를 설정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러시아에 군사 지원이나 대량의 경제 지원을 할 경우 미국이 빼어들 수 있는 카드로는 중국에 대한 최혜국 지위를 철회하는 방안이나 중국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배제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고 팡 교수는 언급했다.
다만 팡 교수는 중국 은행들을 SWIFT에서 배제하는 것은 러시아 은행들을 배제하기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2월4일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과 푸틴 |
◇ 반미공조 파트너인 러 도울 경우 경제 타격 불가피…시 주석 고민 깊어질 듯
공을 넘겨받은 시 주석은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할 입장이 됐다.
지난달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전방위적 협력을 약속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중국이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해 역점을 두어온 부분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고립을 겪고 있는 러시아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이 중국의 대 러시아 지원에 대해 제재 카드를 공식화한 상황에서 시 주석으로선 중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집권 연장 여부가 결정될 올해 하반기 당 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과 기타 지도부 구성원들은 경제와 대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즉, 러시아를 도왔다가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는 상황은 시 주석으로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의 비군사 분야 교역만큼은 중국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줄곧 중러 간 정상적인 교역은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다만 군사 지원에서는 중국이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우선 유엔 헌장과 주권 존중 및 영토 보전 등을 강조해온 중국의 기존 입장에 비춰볼 때 침략을 감행한 러시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군사 지원을 할 경우 대의명분에서 손상이 불가피할 것임을 중국 지도부도 의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넓은 중러 국경을 통해 은밀하게 지원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미국과 유럽이 고도로 주목하는 상황에서 그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중요한 외교 이벤트가 잇따르는 향후 10여일간 중국은 대러 지원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오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각각 열릴 예정이다.
이들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 정상은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제재로 대응하는 데 의기투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무역 담당 EU 집행위원은 지난달 28일 중국-EU 정상회의가 4월 1일 열릴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보도대로 중국과 EU의 정상회의가 열리면 그 계기에 대러 지원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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