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관저 지어진 지 83년·정부 출범 후 74년…'청와대' 이름 붙은지 62년만
김신조 사건부터 궁정동 10·26 사태까지…'권부의 심장'으로 정권 명멸 지켜봐
'구중궁궐 논란' 정부 교체기마다 도마…시민공원 탈바꿈, '완전 개방' 예고
2021년 6월 24일 촬영한 청와대 본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면서 70년 넘게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바로 옆에서 그 명멸을 지켜봐 온 청와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동안의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던 청와대를 이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바꿔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구상이다.
현재의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을 청사 건물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청와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는 이 곳에 건물을 짓고 총독관사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 곳은 최고통치자의 전유 공간이 됐다.
윤 당선인도 이날 회견에서 "(청와대 부지는) 조선 총독부터 100년 이상 써온 장소"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짓고 관저 및 대통령 집무실로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 청와대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푸른 기와 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의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당시 4·19 혁명 분위기 속에 경무대가 지닌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이름을 바꿨다.
이후 62년동안 '청와대'는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단어로 통했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곳을 사용하면서 명실상부한 '권부의 심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격동의 70년 동안 최고 권력자가 머무른 만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때마다 청와대가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부요인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뒷산으로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다.
청와대 불과 500m 거리까지 접근한 무장대원들은 당시 초소 검문으로 발각된 뒤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무력저항을 벌였으나 결국 김신조 1명이 생포되고 28명은 사살, 2명은 도주하며 사건이 마무리됐다.
당시 이들이 사용한 북한산 침투로는 이른바 '김신조 루트'로 불리며 폐쇄됐으나 지난 2009년 41년만에 등산로가 개방된 뒤 북한산과 북악산의 출입통제 지역은 점점 개방이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부지 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지는 '10·26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원수가 피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으로, 그 자리에는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 등이 함께 있었음에도 총격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국가의 크고 작은 고비들 때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 한복판에 자리를 해왔다. 권력이 집중된 곳인 만큼 중대 사태 때마다 국민들의 눈과 귀 역시 이 곳에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던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별회견을 통해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봤다"는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
청와대는 국민과의 소통에 한계가 있다는 이른바 '구중궁궐 논란'으로 과거에도 정권교체기마다 이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지만 현실화하진 않았다.
[그래픽] 대통령실 이전 후보지 비교 |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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