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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푸틴의 마리우폴 고사작전, 시리아 내전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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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러시아군이 군사 요충지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하고 공세를 강화하면서 항복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투항을 거부하고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러시아의 마리우폴 고사 작전은 시리아 내전 개입에서 얻은 학습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차별 폭격과 봉쇄, 이후 러시아에 유리한 지역으로 주민 대피 협상을 반복하며 러시아측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에 마리우폴에서 투항할 것을 최후통첩했다고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총참모부(합참) 산하 지휘센터인 국가국방관리센터 지휘관 미하일 미진체프 대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이전에 러시아와 합의한 민간인 대피용 경로를 이용해 아조프해를 떠나 우크라이나 당국이 통제하는 지역으로 갈 수 있다”면서 “무기를 내려놓는 사람들은 모두 마리우폴에서 안전한 출구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에 동의한다면 21일 오전 9시부터 마리우폴 동쪽과 서쪽 두 방향으로 인도주의 통로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2시간 가량 군인 대피 작업이 끝나면 이 경로를 통해 음식과 의료품 등 필수품 공급도 허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현지 매체 우크라인시카 프라우다와 인터뷰에서 이미 러시아에 “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러시아 국방부의 성명은 속임수라고 반박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의 마리우폴 투항 최후통첩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CNN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협상 의지를 밝힌 지 몇시간 만에 나왔다. 러시아 협상단은 최근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포기, 중립국화 등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러시아가 군사·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은 우리 아이들을 죽였고 상황은 되돌릴 수 없다”면서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를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할 수 없으며 이런 타협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우폴을 집중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친러 반군 세력 집결지인 동부 돈바스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는 러시아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2014년 침공 이후 병합한 남부 크름반도(크림반도)에서 돈바스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을 장악하면 친러 반군 세력을 집결하기 한결 수월해지고, 흑해에서 아조우해로 이어지는 우크라이나군의 해상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어 개전 초기부터 격전이 예상됐다.

특히 최근 러시아군이 민간인 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확대하면서 마리우폴의 피해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 공습을 피해 온 국내 유민 400명을 수용하고 있는 현지 한 예술학교가 20일 새벽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군사작전에 속도를 내지 못하자 민간인 대상 잔인한 공격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리우폴에서 피신해 온 4000명을 포함해 20일 총 7295명의 민간인들이 전투지역에서 대피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 시당국은 지난 한 주 동안에만 전체 인구 43만명 중 약 10%가 마리우폴을 떠난 것으로 집계했다.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도 21일 처음으로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았다. 오데사 시당국은 러시아군이 이날 오전 오데사 외곽의 주택가 건물을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시의회는 이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민간인 시설 겨냥 공격을 부인했다.

오데사는 인구 101만명으로 수도 키이우(296만명), 하르키우(143만명)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로, 전체 물동량의 70%를 소화하는 곳인 만큼 우크라이나로서는 사수해야할 지역이다. 러시아군에 이미 점령당한 헤르손에 이어 마리우폴, 오데사까지 내 줄 경우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해상 보급선은 완전히 차단된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을 때처럼 민간인 시설 무차별 폭격, 봉쇄, 협상으로 이어지는 전략을 택하면서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어가려 한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군은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러시아군이 반군 집결지역인 알레포와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동구타의 민간인 밀집 지역에 유도 기능이 없는 폭탄과 집속탄 등을 떨어뜨리며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러시아군의 공격 대상 지역 중에는 병원과 약국 등도 포함됐다.

러시아는 당시 항복하는 군인들과 주민들에게는 대피로를 열어줬지만 끝까지 저항할 경우 수도·전기 공급을 차단하고, 해외 각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인도주의 지원 물품 보급로까지 공격하면서 고사시키는 전략을 폈다. 마리우폴에서도 수도·전기 등 필수 서비스 공급이 차단돼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눈을 녹여 식수로 사용하고, 인터넷이 끊긴 상황에서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라디오에 의존하고 있다고 알자지라 등은 전했다.

불가리아의 정치분석가 루슬란 트라드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봉쇄로 민간인들을 괴롭힌 이후,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이들리브로 피란민들을 집중시키는 협상으로 이끌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경험으로 미뤄볼 때 교전이 끝난 뒤에도 해당 지역으로 민간인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대피로를 열어주면서도 서부 르비우 등으로 떠나는 피란민들에게 러시아 점령 지역이나 러시아로 들어갈 것을 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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