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신임받는 통화정책 전문가…2013년 취임 후 외화비축·물가안정 이끌어
"중앙은행 내부 분위기 혼란"…중앙은행, 총재 사임설 일축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왼)와 푸틴 대통령 |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며 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비라 나비울리나(58)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의를 표명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 4명을 인용해 나비울리나 총재의 사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가 지금 떠나면 푸틴 대통령이 배신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력 있는 통화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는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너진 러시아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013년부터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나비울리나 총재는 오는 6월 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으나, 지난 18일 푸틴 대통령이 재임명 제청안을 제출하면서 3번째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비울리나 총재의 관리 아래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화와 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축하고, 러시아의 물가상승을 소련 해체 이후 최저 수준으로 관리해 왔다.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뱅크 경제학자 나탈리아 오를로파는 나비울리나 총재가 러시아 중앙은행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도 다른 러시아 정부 관리들 앞에서 나비울리나 총재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옹호하는 등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경제는 서방이 쏟아부은 제재로 휘청이면서 나비울리나 총재가 그간 쌓아 올렸던 성과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으로 여겨진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
나비울리나 총재가 재지명된 날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달 28일 환율 방어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9.5%에서 20%로 인상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당시 나비울리나 총재는 연간 4%라는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2024년으로 미룬다고 밝히며 자국 경제가 끝이 안 보이는 위축과 격변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에는 중앙은행 직원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자국 경제 상황이 극단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는 모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중앙은행 관리들은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내부 분위기를 블룸버그에 전했다.
서방의 경제·금융제재로 러시아가 세계에서 고립되면서 중앙은행의 시장 지향적인 기존의 정책이 더는 제 역할을 못 하리라는 게 내부의 우려라고 이들은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를 15년 동안 알고 지낸 경제전문가 세르게이 구리예프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다시 예전 정책으로 되돌아갈 가망은 없다"면서 "나비울리나 총재는 폐쇄된 금융시장과 재앙적인 제재와 같이 일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기사를 위해 나비울리나 총재에게 입장을 물었으나, 그는 재임명을 비롯해 사퇴 표명설 등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측은 블룸버그의 보도가 나간 뒤 타스통신에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기사 내용을 일축했다.
한편, 옛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시장경제화 개혁을 이끈 설계사로 평가받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대통령 특별대표는 최근 직책을 내려놓고 러시아를 떠났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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