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직접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회의에서 “이번 발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으로서, 한반도와 지역 그리고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력히 규탄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강력 규탄’한 것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 이후 처음이다.
그간 북한의 숱한 미사일 도발도 “대화가 더 긴요해졌다는 신호”로 해석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런 입장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ICBM 발사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 선고’이어서다. 남북대화는 단절됐고 북한의 핵무력 증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으로 평가됐던 모라토리엄마저 붕괴했기 때문이다.
북한 신형 ICBM 도발(화성-17형 추정).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누구보다 ‘평화 대통령’으로서의 업적 달성에 큰 중요성을 뒀던 문 대통령의 임기 초와 말이 모두 북한의 ICBM 도발로 얼룩진 건 뼈아픈 대목이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4일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을 발사했고, 같은 해 7월엔 두 차례에 걸쳐 ICBM인 화성-14형을 발사했다. 11월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문 대통령은 그럼에도 이를 남북대화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며, 평화프로세스를 밀고 나갔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에 나서며 이에 호응했고, 이후 남북 및 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이 열리며 평화 국면이 정착되는 듯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18년 4월 직접 약속한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은 문 대통령의 평화 업적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이 ‘하노이 노 딜’로 결렬되며 대화가 교착 국면에 접어들고, 북한이 올해 들어 소나기 미사일 도발에 나설 때도 문 정부는 북한이 모라토리엄만은 지켜온 것을 희망의 신호로 읽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당시 연설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연설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날 ICBM을 발사하며 문 대통령이 공들였던 ‘평화의 2018년’을 지워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어게인 2017년’, 즉 원점으로 회귀했고, 오히려 북한에 핵·미사일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진우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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