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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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성소수자 부하 여군 장교를 상대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 상관 2명에 대해 대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피해자를 2회 성폭행하고 10회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 해군 함정 포술장 A 소령의 무죄를 확정한다고 31일 밝혔다. 반면 A 소령과의 일을 털어놓던 피해자를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함장 B 중령에 대해서는 이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가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두 상관은 1심(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고등군사법원)에서는 모두 무죄로 뒤집혔다. 이에 2018년 군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두고 판단을 각각 달리했다.
2010년 9월부터 11월까지 피해자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두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A 소령에 대해, 재판부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명력에 대한 판단은 사실심 법원의 재량에 속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질러진 범죄라도, 피해자나 관련 당사자의 진술 등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A 소령이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폭행하거나 협박해 추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기습추행으로도 볼 수 없다"며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모텔에 가게 된 경위를 진술한 부분이 객관적인 증거나 정황에 배치되고, 강간의 수단이 되는 폭행이나 협박도 없다"고 봤다.
지난 2020년 11월 2심 판결 이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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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B 중령에 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B 중령은 피해자가 A 소령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실과 성적지향을 털어놓자, 도리어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범행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난 후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며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팔을 붙잡은 행동을 피해자를 제압하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주요 부분이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된 점, 관련자들의 진술로 진실성이 뒷받침되는 점을 지적했다. 또 피해자가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B 중령이 강제로 범행을 저지른 점도 인정했다. "피해자가 A 소령과의 원치 않은 성관계 등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무력한 상태였던 데다가, 평소 신뢰하던 B 중령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자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어떤 저항도 못 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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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피해자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피해자를 대리한 박인숙 변호사는 "1차 성범죄로 인해 상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2차 성폭력이 이뤄진 것인데, 대법원이 진술의 신빙성을 달리 판단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도 입장문을 통해 "파기환송과 상고기각이 공존하는 판결로 오늘 또 한 번 죽었다"며 "제가 겪어야 할 고통과 기억을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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