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한 은행 지점에 영업점 통폐합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점포 수는 2020년 말 4424곳에서 올해 2월 말 4107곳으로 줄었다.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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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퇴계로 주변 전통시장 등에서 주로 현금을 거래하는 김 모씨(66)는 최근 인근 점포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동시에 사라져 당장의 금융 거래가 막막하다. 김씨는 비대면에 적응하고 싶어도 시중은행이 내놓은 애플리케이션(앱)의 글씨가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문구들이 가득하다. 김씨는 "지난해 지점 폐쇄 통지가 오더니 지점 내 ATM도 사라져 다른 은행의 ATM을 찾아 멀리 가야 한다"며 "비대면 적금은 이자를 더 준다고 해도 주변에 비대면 가입 절차를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가입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 점포·ATM·금융상품 등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3무 시대'를 맞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대면 거래를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 금융' 바람 속에서 김씨와 같은 고령 금융 소비자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일각에선 시중은행들이 디지털화를 핑계로 유지 비용이 드는 ATM이나 점포들을 경쟁적으로 없애며 비용 절감이라는 실속만 챙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금 거래가 더 익숙하고, 비대면 금융상품이라 하더라도 은행 직원들의 설명이 필요한 고령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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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2020년 말 ATM은 2만2343대였다. 이후 1년2개월이 지난 2월 말 현재 2만714대로, 이 기간에 1629개(7.3%)가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최근 10년(2011~2021년) 연평균 4.2% 증가했다. 고령자가 매년 4%씩 늘고 있는데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ATM은 7% 이상 감소하면서 고령자들이 체감하는 금융 거래의 불편함은 배가되고 있는 셈이다.
ATM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응대가 가능한 대면 점포 역시 비슷한 속도로 줄고 있다. 5대 시중은행 기준으로 대면 점포 수는 2020년 말 4424곳이었으나 올해 2월 말 현재 4107곳으로, 1년2개월 동안 317곳(7.2%) 감소했다.
금융권 일각에선 국내 점포 폐쇄 결정이 국외보다 빠르고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은행들은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지난해 3월 점포 폐쇄 관련 자율규제를 마련했다. 폐쇄 3개월 전 사전에 2회 통지하고, 점포 폐쇄 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전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캐나다에선 은행들이 금융소비자보호청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점포 폐쇄나 특정 서비스 종료 4개월 전에 금융 소비자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 특히 폐쇄 점포가 지방·교외 지역에 위치해 주변 10㎞ 내 다른 은행 점포가 없을 때는 폐쇄 6개월 전에 이를 알려야 할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지역신문에도 해당 사실을 게재해야 한다. 또 국내에선 지역 주민에게 통보만 하면 되지만 국외에선 은행 점포를 닫기 전 지역사회,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회의를 많이 연다. 미국에서 하나 이상의 주에 걸쳐 점포를 운영하는 은행이 중·저소득 지역에 위치한 점포를 폐쇄하려면 해당 지역 주민은 서면으로 점포 폐쇄의 구체적인 사유 제출과 장래의 영향에 대한 검토 회의를 감독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 감독기관은 이 요구가 합리적일 경우 개인, 단체, 은행, 감독기관 대표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2021년 상반기 기준)을 찾은 60대 이상 적금 가입자의 80.9%가 점포에 방문해 적금을 들었다. 반면 20대와 30대 가입자는 21.7%, 13.3%만 점포에서 대면으로 적금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비대면 업무(디지털화)를 늘리면서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를 줄여 비대면 적금 가입자에게 우대금리 혜택을 준다. 이에 따라 은행에서 대면으로 가입하는 고령자들은 또다시 이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에 익숙한 20·30대 가입자의 77.4%가 이 같은 우대금리를 적용받은 반면 60대 이상이 우대금리를 받은 비중은 19.4%에 그쳤다. 윤 의원은 "온라인·모바일뱅킹 서비스 이용률의 세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어 청년층에 비해 온라인 환경에 친숙하지 못한 노년층의 손해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 거점 역할을 해온 은행 점포들의 감소는 고령 금융 소비자들의 소외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은행 점포가 단순히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넘어 준(準)관공서의 의미를 지닌다"며 "이 같은 공적 기능을 감안해 점포 수를 최대한 유지하려 하지만, 인터넷은행 등장을 비롯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주요 은행들은 대면 점포를 아예 만들지도 않고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들과의 경쟁 때문에 점포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또 시중은행 입장에선 고령자들이 돈이 되지 않고, 돈을 떼일 위험성이 크다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점포들을 집중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면 연령별 개인 대출의 연체율 수치에서 60대가 가장 높았다. 개인 대출 연체율은 29세 이하가 0.37%, 30대가 0.29%인 반면 60대는 0.87%로, 20·30대에 비해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이 같은 리스크와 최근 정치권 분위기에 따라 은행들은 최근 20·30대를 위한 금융상품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고령층을 위한 상품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연 10%의 고금리를 약속한 '청년희망적금'은 지난 2월 출시 이후 가입 대상인 청년 290만명이 가입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0년 동안 월 70만원씩 적금(소득 구간에 따라 세금 지원)을 부어 가입자 1인당 1억원을 만들수 있도록 하는 '청년도약계좌'까지 준비 중이다. 연령을 기준으로 금리를 차별하는 금융 정책까지 쏟아지자 고령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문일호 기자 / 서정원 기자 /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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