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진 서방피해 최소화…이젠 고통 마주할 때"
에너지제재가 핵심…유럽 불협화음 속 미국 역할에 주목
"이젠 서방이 고통 감수해야 할 때" |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서방이 러시아군 집단학살 정황에 추가 제재를 꺼내들고 있지만 손이 떨리는 모양새다.
서방이 러시아에 일방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제재를 모두 가동해 이제는 자해 위험이 큰 선택지만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서방이 집단학살 정황을 두고 러시아의 책임 추궁 과정에 이 같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해설했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CFR)의 벤 스틸 국제경제국장은 "초기에 나왔던 일련의 제재는 러시아에 타격을 입히면서 서방에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설계됐다"면서 "이제 서방이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부차에서 발생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한 대응으로 한층 수위를 높인 금융 제재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타격 수위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에너지 제재는 건드리지 못했다.
원유와 가스 수출 대금이 러시아 정부 재정의 36%를 차지하는 까닭에 에너지 제재는 러시아 정부의 자금줄을 가장 효과적으로 죌 수단이다.
그러나 그런 제재가 시행된다면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 단기적으로 돌아올 역효과가 만만치 않다.
실제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미 의회에서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더 강력한 제제는 러시아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동맹국 때문에 아직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EU는 현재까지 러시아를 상대로 4차례 제재를 부과했으나 미국처럼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 |
특히 최근 폴란드와 발트3국이 직접 에너지 제재에 나서고 동참을 촉구하면서 EU에서는 내홍까지 감지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달 말 러시아 석탄 수입을 중단하고 가스 수입도 오는 5월에 끊는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러시아에서 석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달 1일부터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구소련권이었던 이들 국가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협이 커져 대러 제재를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도 러시아 에너지 비중이 높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은 에너지 금수 조치에 미온적인 입장이다.
미 정치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클레이턴 앨런 미국 담당 국장은 "쉽고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미 최고치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러 제재 수위를 높이려면 미국이 유럽에 에너지 공급·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에너지 위기로 경제 피해를 크게 받으면 득이 될 게 없다는 점도 짚었다.
앨런 국장은 "서유럽이 경기침체에 빠지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덕적·물질적 지원을 급격히 제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서 전직 준법감시인을 맡았던 대니얼 태너바움도 에너지 수입 억제에 대한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늘리는 선택지가 한정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날 발표된 러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 금지 제재는 더 많은 다국적 기업이 러시아를 떠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으로는 의약품 등 서방 제품을 러시아에서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더 많은 산업에서의 교역을 즉각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 원유에 대한 수입금지 방안이 오는 11일 논의될 것이라며 일찍 시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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