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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이세돌 이긴 알파고의 한계, '인공 뇌'가 넘는다[과학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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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 구조 모사한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급부상

회로 방식 1세대 이어 신소자로 만드는 2세대 기술 연구 활발

'자원-에너지 먹는 하마', 기존 폰 노이만식 컴퓨팅 한계 깰 '대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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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공지능(AI), 자울주행차, 사물인터넷,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들은 갈수록 복잡하고 빠른 컴퓨팅이 필수다. 사물과 사건을 실시간 인식ㆍ처리하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순식간에 계산하고 결과를 전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를 감당하기 위해 고속ㆍ대용량의 반도체를 개발하면서 중앙처리장치(CPU)ㆍ메모리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현재 한계에 부딪혀 있다. 기존의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들은 디지털 비트(bit)를 이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명령을 한 개씩 순차 처리해야 한다. 메모리와 CPU가 분리돼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해 통로에 병목 현상이 불가피하다. 현존 최고의 초고속ㆍ대용량 반도체라도 인간이 느끼는 오감과 같은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CPUㆍ메모리를 식히기 위해 전기도 많이 들어간다. 결국 하드웨어에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구되고 있는 유력한 대안 중 하나가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이다. 인간의 뇌 세포(Neuron)와 영어 모픽(Morphic·모방하다)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인간의 뇌의 작동 원리를 본 딴 '인공 뇌'를 만들어 기존 반도체들을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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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4국에서 이세돌 9단(오른쪽)이 첫수를 착점하는 장면. / 사진=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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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vs 이세돌의 역설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는 당시 세계 최고수였던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에서 승리하면서 AI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날 대국은 기존 방식 컴퓨팅 하드웨어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알파고는 인간의 사고 방식을 모방한 ‘딥 러닝’ 방식으로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러나 하드웨어는 여전히 폰 노이만이 1949년 정립한 컴퓨팅 아키텍처인 ‘컴퓨터 프로그램 내장방식’, 즉 디지털 비트라는 체계를 이용한 메모리·CPU 방식의 컴퓨팅을 사용했다.

알파고는 무려 3000여대의 기업용 서버를 연결해야 작동했다. 1202개의 CPU, 176개의 그래픽 처리 장치, 103만개의 메모리 반도체, 100여명의 과학자 등 엄청난 물적·인적 자원이 동원됐고 시간당 170㎾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했다. 반면 비록 패하긴 했지만 인간인 이세돌 9단에게 필요했던 것은 두뇌와 커피 한 잔뿐이었다. 게다가 이 9단은 필요한 에너지를 바나나 두 개로 다 채웠다. 인간의 뇌는 20w의 초저 전력으로도 구동되기 때문이다. 이날 대국이 AI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기존 컴퓨팅 아키텍처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폰 노이만식 기존 컴퓨터는 디지털 비트를 이용해 정보를 하나 하나 순차 계산해야 하는 데다 저장 장치, 연산 장치가 따로 있어 오가는 동안에도 시간(폰 노이만 병목 현상)이 걸리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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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뇌를 모방하라

과학자들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를 연구하고 있다. 하나는 양자물리학의 ‘큐비트’를 활용해 순식간에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양자 컴퓨팅’ 기술이다. 상용화는 더디다. 무중력·절대 온도(섭씨 -273도) 등 모든 물리적 간섭을 배제해야 큐비트를 구현할 수 있다는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두뇌를 모사해 ‘인공 뇌’를 만들자는 뉴로모픽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뉴런)과 100조개의 시냅스(신경세포 간 연결 구조)로 이뤄져 있다. ‘척 보면 안다’는 말처럼 인간의 뇌는 하나 하나 일일이 다 계산해야 하는 디지털 비트 방식이 아니라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추론 과정을 거쳐 저장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1000억개의 뉴런과 100조개의 시냅스가 병렬 구조, 즉 각자 하나 하나씩 기억하고 계산하며 전송하는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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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보면 아는 '컴퓨터'

뇌는 눈, 코, 귀, 입, 피부 등에서 정보를 접하면 모든 방향으로 신호를 보내 방대하고 무질서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빠르게 추상화하고 이를 통해 사물을 인지하며 사고를 할 수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내부에 기존 반도체의 ‘트랜지스터’나 ‘셀’이 아니라 뉴런과 시냅스를 모방한 소자가 들어 있다. 뇌처럼 정보를 사건 단위로 받아들여 저장·연산·전송을 동시에 한다. 이미지, 영상, 소리 등 다양한 정보를 하나의 반도체에서 연산하고 저장, 학습까지 할 수 있다. 초저 전력으로도 구동이 가능해 열이 나지 않아 전력 소모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유기물질을 활용하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어 희토류 등 광물자원 절약 및 환경 파괴·오염 저감 효과도 기대된다.

최양규 카이스트(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는 데이터 연산을 하는 CPU와 데이터 저장을 하는 메모리로 구성돼 수많은 데이터가 CPU와 메모리 간 이동하면서 큰 전력 소모와 시간 지연이 발생한다"면서 "뉴로모픽 반도체는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해 CPU와 메모리의 구분 없이 연산과 저장을 병렬적으로 동시에 할 수 있어 전력 효율과 처리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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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 트랜지스터 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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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스터로는 구현 어려워

뉴로모픽 반도체를 구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뉴로모픽 반도체 구성을 위한 뉴런과 시냅스를 기존 반도체처럼 회로로 만드는 방식이다. AI 알고리즘의 빠른 처리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가속기 또는 전용 칩(ASIC)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이 방식은 인텔, IBM 등 거대 반도체 회사가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약 5년 후에는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게 인텔의 뉴로모픽 칩인 로이히다. 14나노미터(㎚) 공정으로 개발됐다. 로이히 칩은 128개의 코어로 구성된 130만개의 디지털 뉴런과 1억3000만개의 시냅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비동기 방식으로 동작한다. 기존 반도체보다 처리속도가 최대 1000배 빠르고, 전력 효율은 약 3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IBM을 비롯한 맨체스터 대, 하이델베르크대, 스탠퍼드대, 취리히대에서도 뉴로모픽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한계도 있다. 뉴런 구성을 위해 트랜지스터가 10개 이상 필요하며 시냅스 구성을 위해서도 트랜지스터가 6개(SRAM 기반) 이상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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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뉴런 닮은 소자 개발

이 때문에 회로 기반이 아닌 새로운 소자를 개발해 뉴런·시냅스, 즉 2세대 뉴로모픽 반도체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뉴런과 시냅스를 소자 1개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서 면적과 전력 소모 측면에서 뉴로모픽 반도체의 원래 목표인 초저 전력·초고속 컴퓨팅을 달성할 수 있다. 최 교수 등 카이스트 연구팀은 2021년 8월 뉴런과 시냅스를 동일 평면 위에서 동시 집적으로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 모듈’을 개발한 데 이어 지난 2월엔 인간의 촉각 뉴런을 모방한 뉴로모픽 모듈을 개발했다. 인간의 촉각 뉴런같이 압력을 인식해 스파이크 신호를 출력할 수 있어 뉴로모픽 촉각 인식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2020년 소용돌이 모양의 나노 스핀 구조체인 ‘스커미온’을 이용한 차세대 저전력 뉴로모픽 컴퓨팅 소자의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

최 교수는 "소자 기반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은 신재료 사용에 따른 공정의 미성숙, 소자 간 불균일성, 반복 동작에 따른 소자 특성 열화 등의 측면에서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CMOS 소자 구조 및 공정을 활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상용화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2세대 뉴로모픽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해선 메모리와 가변 레지스터의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멤리스터 소자를 활용하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멤리스터는 메모리와 레지스터의 합성어로 소자의 재료 및 구현 방식에 따라서 플래시 메모리 방식, RRAM방식, PRAM 방식, MRAM 등으로 구분된다.

학계 한 관계자는 "현재 멤리스터 방식의 연구가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으나 다양한 메모리 소자들을 대상으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대부분 단위 기능 블록 수준에서 연구가 진행되다가 최근에는 시스템 수준에서의 구현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쪽으로 진화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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