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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BTS와 유승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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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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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버터'를 열창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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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의 대국민 사기극.

지금은 ‘스티브 유’가 돼버린 가수 유승준씨의 20여 년 전 별명은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당시 봇물 터지듯 국내 연예계에 진출한 해외파 특유의 껄렁껄렁함도, 마약 스캔들도 그에겐 없었다. ‘외국 물 먹은’ 세련된 재미교포가 반듯하기까지. 대중은 그에게 열광했다.

무엇보다 그가 ‘영주권을 포기하고 입대를 자원한 첫 해외파 연예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에 감동했다. 2001년 3월 새 병역법(시행령)이 시행되면서 해외파 연예인들은 위기를 맞았다. 미필 해외 영주권자들이 국내에서 영리 활동할 수 있는 체류 기간을 1년에서 60일로 축소한 것. 1년 정도 국내 무대에 섰다가 해외에서 휴지기를 갖고 컴백하는 꼼수를 더는 쓸 수 없게 됐다. 두 달 넘게 활동하려면 군대에 가야 했다. 유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우물쭈물할 때 그는 “대한의 남아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멋진 말을 남기며 신체검사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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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이 2001년 대구지방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는 모습. 방송 캡처


그러나 입영 날짜까지 받은 그는 2002년 1월 도쿄 콘서트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고 2년 전 이미 신청해둔 시민권을 획득했다. 완벽한 미국인이 됐으니 입대 의무도 사라졌다. 유씨를 믿고 국외여행 허가서에 도장을 찍어준 병무청장이 법무부에 입국금지를 요청해 그는 아직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이익이나 공공 안전을 해할 염려가 있는 자’로 간주돼서다.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쓴 BTS의 엄청난 인기는 뛰어난 음악성 때문만은 아니다. 구설에 휘말리지 않는 자기 관리와 인성도 한몫했다. 생각도 멋졌다. 정치인들이 BTS 인기를 등에 업고 병역특례를 논할 때 이들은 “군 입대는 한국인의 당연한 의무”(2019년 美 CBS 선데이모닝), “나라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응하겠다”(2020년 간담회)며 선을 그었고 “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 갈 테니 우리 이름 팔아먹으며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 X끼들 싸그리 닥치길”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른 멤버도 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소속사 하이브 최고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묘한 말을 했다. “병역 때문에 멤버들이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라며 “국회에 계류 중인 병역법 개정안이 조속히 결론 나면 좋겠다”는 것. 그가 언급한 법안은 국위선양으로 대체복무(군사훈련 3주·봉사활동 544시간)가 허용된 예술체육요원에 BTS 같은 대중문화예술인도 끼워달라는 내용이다. 병역 연기가 가능한 나이를 훌쩍 넘긴 BTS는 이미 ‘문화훈장을 받으면 30세까지 징집을 연기할 수 있다’는 새 법의 혜택을 봤다. 2년 전 BTS 때문에 바꾼 법이다.

병역특례 앞에 붙는 ‘국위선양’은 더는 성립 불가능하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나라 생각하며 공을 차고 노래를 부르나. 결국 자기 돈벌이고 명예욕이다. 이들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국격이 높아진 것일 뿐. 올림픽에서 승리에 환호하는 국가대표들마저 순수성을 의심받는 시대다. BTS 입대로 소속사 수익, 주가가 떨어지는 걸 왜 국회가 걱정해야 하는지. BTS 주머니 챙겨주려 법을 고쳐서 안 그래도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공정을 흔드는 순간, 이 법은 ‘BTS 악법’이 될 거다. 20년 전 “국가 부름에 응하겠다”면서 속으론 다른 계산을 한 유승준과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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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임 정치부 기자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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