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기억할 오늘] 국제사회의 '독립국가' 지우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18 소말릴란드
한국일보

소말릴란드 독립기념일(5월 18일)을 맞아 국제사회의 독립국가 인정을 촉구하는 런던 시위. africanarguments.or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과서가 정의하는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1933년의 '국가의 권리 의무에 관한 몬테비데오 협약' 제1조도 '정주 주민과 일정한 영토, 정부, 타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국가의 요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제사회의 인정이라는 외교적 요건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바티칸시국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국제사회가 중화민국(대만)을 배제해온 게 그 예다. 실질적 독립국가로서 만 30년을 버텨온 아프리카 소국 소말릴란드를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까닭도 그것이다.

소말릴란드는 1991년 5월 18일 내전상태의 소말리아에서 독립했다. 1960년 영국·이탈리아 식민지에서 독립해 '소말리아'로 출범한 지 31년 만이었다.
식민지 시절 북부 소말릴란드는 영국이, 남부 소말리아는 이탈리아가 통치했다. 1960년 6월 26일 소말릴란드가 먼저 독립했고, 닷새 뒤 소말리아가 독립하면서 단일국가를 이루었다. 하지만 1969년 군부 쿠데타로 시아드 바레(Siad Barre)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표변했다. 골수 민족(혈통)주의자였던 바레는 부족 화합이 아니라 자기 부족(Darod)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켜 1980년대 타 부족 반군과의 내전사태를 야기했다. 바레 정권은 영화 '모가디슈'에서처럼 1991년 붕괴했고, 이후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소재가 된 1993년 '모가디슈 전투' 등 반군 간 내전이 이어졌다.

이사크(Isaaq)족 반군 '소말리아국민운동(SNM)'이 1991년 '소말릴란드' 독립을 선언하며 내전에서 발을 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북부 영토를 사실상 전유한 덕이었다. 대통령제 공화국 소말릴란드는, 이후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등 드물게 안정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해왔다. 정당정치 이면에서 작동하는 부족원로회의의 안정적 시스템 덕분이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소말릴란드 독립을 외면하는 주된 이유는 부족 단위 신생 국가를 인정할 경우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독립 소요 사태가 촉발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