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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대통령 사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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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주인공 장-바티스트는 수집욕에 빠진 연쇄 살인마다. 여성의 ‘좋은 체취’를 모아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며 체취 수집에 나선다. 마침내 향수를 만들어 몸에 뿌리지만, 향에 매혹된 사람들에게 몸을 뜯어먹혀 목숨을 잃는다. 많은 컬렉터가 장-바티스트처럼 수집욕에 사로잡혀 산다. 돈과 시간, 열정을 아낌없이 쏟는다. 때론 자기 삶이 망가지는 것조차 감내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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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 조지 5세는 우표 수집에 온 정성을 쏟았다. 자동차 수집가로 유명한 브루나이 국왕 하사날 볼키아는 7000대의 자동차 컬렉션을 자랑한다. 롤스로이스, 페라리, 벤틀리만 1500대 넘는다. 값지고 희귀해야만 수집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 굴지 화장품 회사 대표는 “젊은 직원들과 대화 자리를 마련했더니 앉은 자리에서 운동화 수집 얘기만 하더라”고 했다. 몇 해 전 아이돌 그룹 지드래곤 생일을 기념해 나이키가 출시한 21만원짜리 한정판 스니커즈가 컬렉터들 사이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수집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자양분도 된다. 고대 지중해의 해상 교통 요지에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헬레니즘 세계 전역에서 서적을 모았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열정이 이룬 결실이었다. 지중해 곳곳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입항하는 모든 선박에서 책을 빼앗듯이 빌려다 필사했다. 다만, 원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필사본을 돌려줬다. 수천년 전에도 ‘원본 확보’는 컬렉터들의 수집 원칙이었다는 뜻이다.

▶수집보국(蒐集報國)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서예가이자 수집가인 고(故) 손재형은 태평양전쟁 말기 도쿄의 한 수집가가 소장한 ‘세한도’를 입수하기 위해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를 찾아갔다. 100일 넘게 설득한 끝에 세한도를 손에 넣고 돌아왔다. 그 뒤 도쿄 수집가의 수장고에 포탄이 떨어졌다니 손재형이 없었다면 세한도는 한 줌 재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소장품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도 있었다. 두 작품은 훗날 또 다른 걸출한 컬렉터인 삼성가(家)로 자리를 옮겼고, 이 중 인왕제색도는 국가의 컬렉션이 됐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를 매입한 이가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라고 한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도 그가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직 대통령 사저 수집 아니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매입 목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선의의 용도로 쓰였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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