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6월 민주항쟁 20주년 관련 인사 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통령의 연설] 지난 10일 6월항쟁 35주기를 기념해 이번 회차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이 연설에서 6월항쟁이 언급된 사례들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던 만큼 대통령의 연설에도 무수히 등장하는데요.
유독 지난 1년 동안은 6월항쟁이 더욱 많이 회자됐던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해 7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민주공원을 찾았던 일이 있었는데요. 윤 대통령이 6월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보며 "부마항쟁인가요?"라 질문하자 곁을 수행하던 정치인들도 그렇다고 답하며 많은 논란을 야기했죠.
올해 1월에는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별세하며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장례식에서 호상(護喪)을 맡았습니다. 우 비대위원장은 1987년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이한열 열사의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이한열 열사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가져왔죠.
역대 대통령들도 각자 입장에 따라 6월항쟁을 다르게 대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연설문 기록을 통해 이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 6월항쟁에 "공동체 파괴하는 사태…폭력으로 혼란 조성하는 길은 평화적 정부 교체 방해 행위"
6월항쟁을 통해 정권을 내려놓게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설 중에도 6월항쟁을 언급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1987년 6월 10일 당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민주정의당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참석 치사'인데요. 여기에서 지명되는 대통령 후보는 다들 아시는 것과 같이 노태우 전 대통령입니다.
고문치사 사건과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전 전 대통령이 계속해 집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고, 결국 자신의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었죠.
전 전 대통령은 건국 이래 최초로 집권여당이 현임 대통령이 아닌 다른 후보를 내세워 평화적 정권 교체에 나선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죠. 그러면서 6월항쟁을 전후한 학생운동과 각종 시위에 대해서는 혹평을 합니다. 그는 연설문 말미에 "어떤 경우라도 불법과 폭력, 그리고 선동으로 우리의 공동체 자체를 파괴하는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며 "정치권 밖에서 폭력으로 혼란을 조성하는 길은 평화적 정부 교체를 방해하는 행위로서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강조했습니다.
◆ PK 출신 대통령들 "부산이 6월항쟁 선도"
6월항쟁하면 떠오른 것들은 서울 소재 대학들의 시위와 서울시청 앞 광장, 명동성당과 같은 장소들인데요. 대부분 국민들의 머릿속에 6월항쟁의 이미지는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채워져있지만, 부산·경남 출신 대통령들은 부산이 항쟁의 발원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0월 부산민주공원 기공식에 참석해 "부산은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한 호국과 애족의 고장"이라며 "1960년의 4·19혁명과 1979년의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을 선도한 이 나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고 외쳤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6월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나는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부산에서 제일 먼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했고, 기간 내내 시위를 가장 치열하게 전개해 타지역 시위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보다 결정적으로는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돼 서울 등 타지역의 시위가 급격히 위축됐을 때 부산에서 가톨릭센터 농성과 함께 더 많은 시민들이 더욱 치열하게 시위를 전개해 항쟁의 불꽃을 되살렸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연설에서 6월항쟁을 가장 많이 언급한 대통령입니다. 문 전 대통령과 함께 영남지역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만큼 애정도 남달랐을 텐데요. 그래서인지 6월항쟁의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그는 2007년 6월항쟁 20주년 기념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결국 군사정권을 이어가게 된 것을 언급하며 "1987년의 패배, 1990년 3당 합당은 우리 민주세력에 참으로 뼈아픈 상실이 아닐 수 없다"며 "지역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에 우리는 정권 교체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수구세력이 다시 뭉치고 일어날 기회를 준 것"이라 말했습니다.
◆ 같은 TK 출신이지만…매년 기념사 남긴 MB vs 언급 한 차례 없는 朴
대구·경북 출신의 보수진영 대통령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온도 차이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을 시작으로 5년간 매년 6월항쟁 기념식에 축사를 남겼습니다. 앞서 소개한 PK 출신 대통령들처럼 몰입도가 깊지는 않지만 적잖이 중요히 생각했던 것이 드러나는 부분인데요.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축사를 남긴 기록은 물론 한 차례 언급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요.
이 전 대통령은 대학생 시절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으로서 박정희 정부의 한일수교 반대 시위를 벌이다 수감생활까지 한 경력이 있는 만큼 6월항쟁에도 심적으로 많이 동조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1987년이면 이 전 대통령이 샐러리맨 성공 신화를 쓰며 현대건설 사장에까지 오른 시점이니 6월항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2008년 6월항쟁 21주기 기념식 축사에서는 "21년 전 우리는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았다"며 "우리는 6·10 민주항쟁을 통해 진정한 민주화의 새 시대를 열었고, 이후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왔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 했고, 지방자치를 정착시켰으며, 평화적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적 헌정질서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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