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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세계 속 한류

[특파원 리포트] 한류 자랑도 성숙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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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한 외교 인사는 필자와 만나 자리에 앉자마자 방탄소년단(BTS)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BTS가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 아시아 혐오 범죄에 대해 논의하는 영상을 일본 TV 뉴스를 통해 몇 번이나 봤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민간 외교에 늘 부러운 마음이 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선일보

일본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 비자 발급을 받으려는 일본인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닛테레 뉴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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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립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에서 살다보면 ‘한류 파워’에 놀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게 사실 일상이다. 일본에서 누구를 만나도 처음엔 한국 드라마·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도 시부야의 명물 하치코 광장엔 BTS 앨범 광고가 걸려 팬들이 몰린다. ‘일본 젊은이의 거리’ 하라주쿠에서도 한류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 한국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모인 한식 푸드코트부터 삼성 갤럭시, 네이버 계열 캐릭터숍 라인프렌즈, 한류 아이돌이 선전하는 화장품을 내세운 코스메틱숍이 하라주쿠 대로변에 줄지어 섰다.

이런 일본 내 분위기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게 이번 달 관광 비자를 받으러 주일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몰려든 일본인들이었다. 한국 관광 비자를 위해 수십 명이 영사부 건물 앞에서 밤샘도 불사하는 모습 때문에 한·일 언론사들이 총출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최근 영사부가 여행 일정에 따라 비자 신청일을 지정해 주면서, 전과 같은 밤샘 행렬은 사라졌지만 온라인에는 여전히 ‘아침 여섯 시에 도착하면 40번대 번호표를 받아 대기할 수 있다’ 등의 팁이 공유된다.

동시에 양국의 민간 교류가 깊어질 때마다 반대 급부로 민족 감정도 커지는 듯하다. 일본 내 관광비자 열풍 기사를 쓰면 일본인이 한국 관광을 오는 건 환영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에 가는 건 안 된다고 따끔히 충고하는 독자 메일이 온다. 한·일 문화계가 국경을 넘어 합심해도, 그 결과물이 ‘케이(K·한국 것)’인지 ‘제이(J·일본 것)’인지를 중시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CJ ENM의 투자 아래 한국 배우들과 한국어 영화를 만들어도, 한국 아이돌 인기에 고무된 한·일 연예기획사가 합심해 한국풍 일본인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도 그렇다.

일부 일본인 사이에선 반대로 한·일 미디어가 한국 관련 인기를 과장한다는 근거 없는 불만, 한국 아이돌 인기를 일본 아이돌이 곧 뛰어넘을 수 있다는 대결 구도 만들기가 마찬가지로 만연하다. 양국 일각의 이런 극단적인 반응은 실시간으로 번역되고 공유된다. 한류 인기, 그로 인한 민간 교류 확대가 한쪽에선 서로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셈이다.

한류의 인기와 영향력이 놀라움을 넘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 이제는 한류의 양적 성과와 영향력에 자부심을 갖되 그 인기를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성숙한 자세도 고민했으면 한다.

[최은경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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