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답을 찾다] 경직적 예타조사 ①
"기재부, 예타 재량권 지나치다" 여야 정치권 한목소리
미국선 관리예산처가 지침 주면 평가는 부처 자율 진행
일본도 `정책평가법` 근거해 수행부처가 사전평가 수행
“예타 도입 20년 넘어…부처 자율·책임관리 확대해야"
이 과정에서 당시 안도걸 기재부 제2차관은 기재부가 오히려 정밀하게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각 부처 사업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으로 “(사업의) 모양을 제대로 만들어 준다”고 반박하자, 안 전 차관보다 일찍 기재부 2차관을 역임했던 류성걸 소위원장이 “기재부가 쪼물딱거려 비용대비 편익(B/C)을 막 만들고 있으니 예타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꾸짖었다.
그래픽=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기재부 권한 크니…예타조차 못 받는 부처 사업
예타 조사의 재량권에 기재부에만 과도하게 치우쳐 있고, 그러다 보니 예산을 주무르는 기재부가 사업의 경제성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예타 조사의 경직적 운용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예타제도는 1999년 도입돼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경제·정책·지역균형발전 분석 등을 통해 사업 타당성을 기재부가 검증하는 것으로,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도입됐다. 도입 이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재원 낭비를 막고 국가재정의 투자 효율성을 높여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현 제도는 사업의 추진여부를 판단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에 치우친 나머지 지역균형 개발 등 국가 정책상 필요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거나 기재부 재량권에 따라 각 부처가 신청한 사업 상당수가 예타 조사도 해보기 전에 탈락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7월 당시 소위에서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차 국가철도망 계획도 대부분 다 수도권으로 돼 있고 부산 쪽은 하나만 됐는데, 기재부에서 계속 (예타 조사를) 주관하니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에서 교통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던 정일영 민주당 의원도 “A부처가 사업 10개를 들고 가면 5개만 하라고 실무 과장과 국장들이 조정하고 뺀다”며 “각 부처에서는 예타라도 받고 싶은데 기재부에서 그 것도 안 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사업 주무부처의 자율성을 부여한 이른바 탑다운(Top-Down) 방식의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제도는 지난 2004년 도입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예타 제도 보완과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기재부가 각 부처의 세부사업에 대한 사업추진 여부 등 모든 상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상황이라며 중앙예산기관이 총 예산규모, 국가채무 규모, 지출한도 등 예산 총량을 먼저 결정하고 난 후 각 부처가 세부 사업별로 예산 규모를 일정한 재량을 갖고 결정하는 탑다운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선 가이드라인만…사업 주무부처가 평가
우리 예타제도와 비슷한 사전평가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영국·일본 등 해외에선 재정사업 추진을 위한 관문은 있지만 평가 수행 주체는 사업 주무부처에 두고 있다.
먼저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예산관리체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관리예산처(OMB)가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시행절차를 지침형태로 제공한다. 이를테면 OMB는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지침으로 재정사업 추진절차를 계획하고 예산을 배정한 후 사업조달과 사후관리 순으로 관리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예산배정 단계에서 사업의 타당성이 인정된 사업은 정부의 예산 승인 절차를 거쳐 예산이 배정되고 사업을 착수할 수 있다. 사업의 타당성 평가는 OMB가 아닌 각 부처에서 수행한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일본은 `행정기관이 실시하는 정책평가법`에 근거해 신규사업 채택 여부를 판단하는 사전 평가를 포함한 사후평가, 재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사전 평가는 수행 부서가 공공사업을 홍보하고 저당성과 타 부처와의 정책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행하고 있다. 평가 기준은 경제성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파급효과와 사업의 실현 가능성 등을 포함한 종합평가 형태로 수행된다. 사전 평가가 예산 확보 이전 단계에서 예산 배분의 근거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예타와 비슷하지만, 사업 유형별로 평가지침에 근거해 각 부처에서 사전 평가를 수행한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
아예 사전 평가를 예산 편성과 무관하게 진행하는 나라도 있다. 영국은 관문심사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는 투자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타당성평가, 설계, 조달, 공사, 준공, 이전 등 제반 단계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도입했다. 이 제도는 총 6단계로 구성되며 공공사업의 시작부터 완료까지 전 과정을 단계별로 관리하는 것으로 각 단계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관문심사제도는 예산 배정의 근거로 활용되기보다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활용된다는 점에 예산 배정의 근거로 활용되는 우리나라 예타와 차이가 있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현재 주무부처는 예타 신청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에 불과하다”며 “예타제도 도입 20년이 지난 만큼 주무부처의 책임 관리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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