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한 해경…"조직 쇄신 계기" vs "지휘부 무책임"
펄럭이는 해양경찰청 깃발 |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서해 피살 공무원'의 월북 여부 수사 결과를 1년 9개월 만에 뒤집은 해양경찰이 후폭풍에 휩싸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조직이 해체됐다가 부활한 뼈아픈 경험이 있는 해경이 이번에는 수사 결과 번복으로 지휘부가 일괄 사의를 표명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24일 해경청에 따르면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 9명은 이날 오전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하고 일괄 사의를 밝혔다.
정 청장은 이날 오전 전국 지휘관들이 참석한 화상 회의에서 "저는 이 시간부로 해경청장 직을 내려놓는다"며 "오랜 고심 끝에 우리 해경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새로운 지휘부를 구성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난 16일 피살 공무원의 월북 여부를 뒤집는 최종 수사 결과를 인천해경서가 발표한 지 엿새 만에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해경 안팎에서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청장 외 서승진 해경청 차장과 김병로 중부해경청장 등 치안정감 2명과 김용진 기획조정관 등 치안감 5명도 이날 함께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들 중에는 2020년 9월 당시 본청 수사정보국장으로서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며 직접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윤성현 남해해경청장도 포함됐다.
해경청 관계자는 "치안정감 2명과 치안감 5명은 지휘부로서 책임을 공감하고 각자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피격 공무원' 사건 책임"…해경 지휘부 집단사의 |
정 청장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통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면 재가를 거쳐 의원면직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해경 지휘부 8명은 사직서가 모두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사상 초유의 지휘부 집단 공백 사태를 맡은 해경 직원들은 이날 갑작스러운 사의 발표에 당황하면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 해경 직원은 "세월호 사고 후 정부가 해경을 해체했을 때도 지휘부가 집단으로 사의를 하진 않았다"며 "이번에 청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 있었지만, 지휘부 9명이 동시에 사의를 밝힐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경 직원은 "지휘부 전체가 이번 수사와 관련해 책임지는 상황은 그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며 "조직을 쇄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경 내부에서는 "새 지휘부가 꾸려질 때까지 당분간 혼란은 있겠지만 앞으로는 정권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며 "국민들이 납득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해상 수사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반면 해경의 '월북 번복' 발표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고, 검찰 수사도 앞둔 상황에서 지휘부의 집단 사의 표명은 무책임한 모습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해경 직원은 "세월호 때 조직이 해체되는 수모를 겪고도 말로만 반성하고 달라지지 않았다"며 "초유의 지휘부 일괄 사퇴로 해경 역사에는 또 한 번 오명만 남을 뿐 책임지는 모양새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 유족은 이날 해경 간부 9명의 사퇴 발표 후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해경청 형사과장과 인천해경서 수사과장도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은 이어 오는 28일 윤성현 남해해경청장과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등 4명을 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고 전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자의 형 이래진씨는 당시 월북이라고 발표한 관계자 2명도 그만둬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이들 중 1명인 당시 해경청 형사과장은 국가인권위로부터 인권침해를 이유로 징계 권고도 받았다"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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