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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슈 인공지능 윤리 논쟁

서울대 논문 짜깁기…마음만 앞선 '공장식 랩' 기본도 안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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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차현아 기자, 김인한 기자] [윤성로 교수 연구팀 'AI 논문' 표절…27일 연구진설성위원회 가동]

머니투데이

서울대 정문 / 사진= 서울대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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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연구팀이 국제 AI(인공지능) 학술대회에서 표절 논문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학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입을 모은다. 최소한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면 '짜깁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제1저자 '개인의 일탈'이란 해명이 나오지만, 국내 AI 연구계의 무한경쟁이 연구 윤리의 실종으로 이어졌단 지적이다. 더욱이 국내 최고대학인 서울대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AI 분야에서 국내 학계의 신뢰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서울대는 27일부터 윤 교수 연구팀의 논문 표절 의혹에 관해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가동했다. 조사와 심의, 의결 등 위원회 진행 사항은 모두 원칙적으로 비공개다. 예비 조사 여부·조사 기간 등을 묻는 질문에 서울대측은 "규정상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연구팀은 지난 23일 열린 '2022 국제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학술대회(CVPR)'에서 '신경망 확률 미분 방정식을 통해 비동기 이벤트를 빠르게 연속적인 비디오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기법'이라는 논문을 냈다. 논문 참여자는 제1저자인 김모 씨와 4명의 공저자, 교신저자인 윤 교수 등 6명이었다. 윤 교수는 최근까지 장관급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공저자 중 한 명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자녀로 확인됐다.

그러나 한 유튜브 영상에서 "(윤 교수팀) 논문이 이전에 발표된 10개 이상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곧바로 1저자인 김씨는 물론 윤 교수도 의혹을 인정했다. 다만 김씨는 "논문 관련 사항은 모두 제 잘못"이라며, 윤 교수를 비롯한 공동저자들에 대한 비난을 삼가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표절 인정' 하지만 개인 일탈?

그럼에도 학계에선 이번 사건을 단순 개인 일탈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문 참여자들이 최소한의 검증 의무조차 수행하지 않았을 정도로 학계의 연구 윤리가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전 연구윤리정보센터장)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려면 연구진이 논문 품질은 물론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논문을 받는 학술지도 에디터 리뷰 절차를 거치는데 "양측이 모두 제 역할을 하지않았다"는 지적이다. KAIST 소속 A 교수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논문 발표를 보면 (표절 내용이 있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제목만 봐도 '어느 그룹에서 연구중'이라고 알 정도다. 사실상 짜깁기는 불가능하다"며 "연구의 기본조차 안 지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질보다 양에 치중하는 '논문 공장'식 랩(LAB)의 한계, 선도국에 뒤처진 국내 AI 연구의 조바심이 빚어낸 참사라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연구팀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연구 성과를 내기보다는 양적 성과에 몰두해 지도교수의 시각에 맞춰 논문을 쏟아내는 '공장식 랩'이 숨은 배경이란 지적이다.

한 박사급 연구자는 "군대 문화가 그대로 연구실에 파고들면서, 랩마다 일정 규모의 논문을 양산해내는 게 국내 연구 현장의 실태"이라며 "논문의 양산에 급급해 1저자는 표절에 둔감해지고, 공저자들도 제대로 상호 검증조차 소홀한 현실이 빚어낸 참극"이라고 지적했다.


AI 무한경쟁에 "조바심의 부작용…韓 연구진 신뢰 훼손"

AI 분야가 주요 선도국은 물론 국내외 빅테크들마저 너나없이 뛰어드는 전장이 되면서, 어떻게든 연구 성과를 선점하려는 국내 연구진의 조바심이 문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완성된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보단 다른 연구진보다 이슈나 아이디어를 선점하려는 욕망이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뒤처진 한국 연구의 AI가 국제적인 신뢰도 훼손에 직면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서울대가 국내에서 우수한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술적 측면에서도 한국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A교수도 "적어도 AI 분야에 대해선 서울대는 물론 한국 과학계 전체를 글로벌 학계에서 색안경 끼고 볼 수 있다. 최소한 AI 분야의 신뢰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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