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여 만에 최대 수주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조선 산업이 이중의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당장 올해 하반기 늘어나는 건조 물량을 소화해낼 생산 인력이 부족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할 설계·연구개발 부문 인력도 과거의 절반 이하로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보릿고개' 여파가 국내 조선 산업의 현재·미래 모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지난해 설계·연구개발 인력은 총 651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2만415명)과 비교해 68% 줄어든 규모다. 연구개발 투자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조선 3사가 한 해에 집행한 연구개발비는 2015년 4319억원에서 지난해 2163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부터 조선 3사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LNG 이중연료추진선 수주를 휩쓸고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3사가 보유한 LNG 관련 기술은 20여 년 전부터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온 결과물"이라며 "미래 먹거리를 위한 집중 투자가 필요하지만, 조선 업계는 여전히 장기 불황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투자 규모와 연구개발 인력을 늘리는 데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 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갖추고 앞으로 더 심화할 인력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육체·지식 노동의 생산 효율성을 높일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이신형 대한조선학회장(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은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후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韓조선업 '10년 불황' 그늘…물 들어왔는데 노 저을 사람이 없다
미래 대비 못하는 K-조선
2016년 조선업 최악 암흑기
수주 절벽에 대거 구조조정
하반기 건조작업 본격화 불구
숙련 기능직, 노동강도 높고
임금 매력도는 낮아서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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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선박에 대한 수요가 줄고, 대안으로 삼은 해양플랜트산업까지 유가 하락으로 발주가 끊기면서 겪은 10년여의 불황을 털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인재들이 조선업계를 외면하고 있고, 당장 수주 물량에 대한 건조 작업을 맡을 기능공의 경우 조선소에 일손이 모자라다는 소식에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장기간 지속된 불황으로 조선업계는 다른 산업 현장에 비해 처우가 낮고, 불황·호황에 따른 온도 차가 커 고용 안정성이 낮은 탓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눈앞의 일감을 소화할 인력도,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인재도 없다. 이들을 조선소로 끌어들일 만한 특별한 유인책마저 없다. 이게 K-조선의 현주소"라며 "조선시장이 회복기를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면 조선업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국내 조선업계가 지금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위기감이 높다"고 말했다.
3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불황 터널'을 지나는 동안 설계와 연구·개발 인력을 대폭 감축했다. 설계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은 2015년 1만8643명에서 지난해 5236명으로 72% 줄었고, 같은 기간 연구·개발 인력은 1772명에서 1283명으로 28% 줄었다. 수주 급감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선업계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두뇌' 역할을 맡을 핵심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한 결과다.
2016년은 국내 조선업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로 꼽힌다. 2007년 한 해에만 321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에 달했던 국내 조선업계 전체 수주량은 2016년 224만CGT로 쪼그라들었다. 2008년 6725만CGT에 달했던 총 수주잔량은 2017년 1798만CGT로 떨어졌다. 근근이 버티던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가 법정관리에 내몰렸다. '수주절벽'에 처하자 조선 3사도 희망퇴직을 실시해 사람들을 내보냈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총 1749만CGT를 수주하며 수주잔량이 2950만CGT로 늘어났다. 조선사별로 대략 2~3년 치 건조 물량을 쌓아둔 상태다.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하고도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경기 순환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계 특성을 고려하면 언제든 이 같은 수주 특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한국 조선산업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위상에 걸맞은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조선소로 들어오기를 희망한다"며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 5~6년간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쳤다.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조선업계가 이 같은 과거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게 현재로선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소 현장은 먼 미래를 내다볼 여력이 없다. 지난해 수주한 선박들에 대한 건조 작업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생산인력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질 예정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연말까지 조선소 현장에 용접공·도장공을 포함해 9500여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선사들과 협력사들은 생산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구인 공고를 내고 있지만 구직자들 반응은 미지근하다. 과거에 비해 조선소가 직장으로서 가지는 매력도가 떨어진 탓이다. 기능인력 입장에선 임금 수준이 특별히 높지도 않는데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높은 노동 강도, 언제 다시 구조조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울산·거제·영암 등 주요 조선소 소재지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신규 인력 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신규 인력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었지만 조선소 기피 현상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5월 기준 조선 3사의 직영·사내협력업체 기능직 인력은 6만3227명으로, 최근 5개월 사이 102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당장 일손이 급한 용접공·도장공을 채용하기 위해 정부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하 조선사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외국인 채용의 문턱을 낮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한숨을 쉰다.
생산인력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업계는 사내협력사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를 요구하고 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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