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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바이든 ‘인권 원칙’ 어기고 사우디 왕세자 만나나… “증산 요청 거절”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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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처음엔 왕세자 대면 회담 반대, 참모 설득에 막판 결정”

“사우디 증산 여력 없을 가능성도” 사우디 불편한 기색

당내 반발 일 듯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3∼16일(현지 시각) 중동 순방 때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5일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결정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성사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처음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입지가 강화되는 것을 우려해 사우디 방문을 반대했었지만 참모들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해 미국의 석유 증산 요청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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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양국 정상회담 사진에 조 바이든(오른쪽) 대통령과 빈살만(왼쪽) 왕세자 사진을 합성한 모습. /위키피디아·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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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는 이날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국제 유가 안정과 중동 내 이란의 영향력 억제를 위해서는 사우디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참모들의 수주에 걸친 설득 끝에 바이든 대통령이 마음을 돌렸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8년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납치·피살되고, 빈 살만 왕세자가 배후로 지목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019년 “그들(사우디)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따돌림받는 신세(pariah)로 만들겠다”고 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종 결정에는 이스라엘의 의중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이 이런 과정에 힘을 보태길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사우디에 가는 것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강한 입장이 있었다”고 했었다.

로이터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설득해 (이스라엘과 관계 재설정을 하도록 해) 중동 대(對)이란 지역 장벽을 강화해 이란을 압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의 영향력 억제를 위해서도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는 “인권이라는 고유 가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제프 머클리 등 민주당 상원의원 4명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사우디 방문에서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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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미국 워싱턴 DC 사우디 대사관앞에 '자말 카슈끄지 로'로 바뀐 표지판이 나붙었다./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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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의식한 듯 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국왕과 왕세자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는 더 큰 회담 가운데 일부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양자 회담이 아닌 다자 회담에서 잠시 만난다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으로 인권 문제의 책임이 있는 왕세자와 밀착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사우디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의 거리 두기식 발언이 무함마드 왕세자 측근들에게 모욕적 감정을 느끼게 했다”고 했다. 이어 “이런 태도로는 (사우디에) 어떤 부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사우디가 미국의 요청대로 증산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의 존 켐프 선임시장분석가는 최근 칼럼에서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사우디 아람코는 지난 3월 원유 생산 능력을 기존 하루 1200만배럴에서 1300만배럴까지 늘릴 방침이라고 발표했다”며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우디의 원유 최대 생산량은 2020년 4월에 1200만 배럴이었고, 2018년엔 1080만 배럴에 불과했다”고 했다.

이어 “사우디는 항상 매장량이나 원유 생산량을 비밀로 해왔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유 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지 확실히 알 수 없다”면서도 “(사우디가) 생산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여력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사우디가 미국의 의중대로 단기간에 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미국 대통령의 석유 추가 요청에 응한다는 ‘단기간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사우디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러시아와의 관계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며 “사우디 왕국의 지도자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을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적어도 2024년까지는 러시아 수출 (단절로 인한) 큰 손실을 상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해) 사우디가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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