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허준이' 나올 시스템 부실, 교육·연구 체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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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반갑지만, 반성해야 할 게 더 많다."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 겸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하자 과학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6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허 교수와 화상 인터뷰가 진행됐다. "한국 교육이 날 키웠다"며 겸양했지만 수학자로 꽃 피울 때까지 허 교수의 여정을 살펴보면 우리 과학계가 고치고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허 교수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과학고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재능이나 실력 여부와 관계없이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준비해야 과학고를 갈 수 있는 입시 체계 때문이다. 또 문제 풀이 중심의 학교 과목 수학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은 이와 관련해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만 테스트하는 현재의 체계를 보완할 때가 됐다"고 일침을 놨다.
허 교수가 홈 스쿨링을 하게 된 경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부모는 당시 체력이 약한 허 교수를 야간 자율학습에 빼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가 거부를 당했다. 허 교수는 이후 시인이 되겠다며 홈 스쿨링을 택했다. 빡빡한 교육 현장은 허 교수를 자칫 ‘낙오자’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허 교수가 의대나 법대를 선호하는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의사나 변호사는 됐을 지 몰라도 위대한 발견에 필요한 '자유로운 영혼'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천재들이 즐비하다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였지만 허 교수를 품지 못했다. 허 교수는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휴학을 했고, 외국인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를 만나서야 영감을 얻어 본인의 수학적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다. 200년전 서양에서 만들어진 교육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학문의 감옥', 억지로 '융합학과'를 만들어 놓아야 할 정도로 학문간 구분이 엄격한 한국의 대학 교육의 실체였다.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전공 선택을 보장하는 외국 명문대였다면 일찌감치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문을 골랐을 수 있다.
한 서울대 명예교수는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려면 일정한 자격만 갖춘 학생들을 입학시킨 후 산업 수요나 적성에 맞게 알아서 전공을 선택하도록 대학 교육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은사인 김영훈 서울대 수학부 교수도 "우리나라에선 대학 (전공을) 선택시 정보가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본인의 뛰어남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 돌아 간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영재임을 일찍 발견하고 육성할 수 있었다면 4~8년 전에 (필즈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과학계에선 허 교수처럼 좀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허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하루 4시간만 연구에 몰두한다"고 밝혔다. 하루 종일 학교에 나와 1년에 최소 6개 과목을 강의하고 시험 감독ㆍ채점, 행정 관리에 시달리는 국내 대학 연구자들은 꿈도 못 꿀 환경이다. 중세 유럽에서 사상ㆍ철학의 암흑기를 뚫고 과학이 발전한 것은 귀족들의 사생아들을 모아 놓아 '할 일이 없었던' 수도원 수사들이 연구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연구, 호기심을 채우려는 열정, 안정적인 생활이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대발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과학자들이 큰 프로젝트나 연구비 따내기 보다는 자기만의 호기심을 추구하는 연구 문화가 자리잡으면 노벨상도 보다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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