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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日 아베 전 총리 피격 사망

‘아베 피격’ 韓 첫 반응 ‘노코멘트’...中은 일본어로 위로 전했다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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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교토에 유세를 온다고 공지했던 자민당 후보 공지 포스터. 아베 전 총리는 직전 피격당해 이 연설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민당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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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7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는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숙원이던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 유치를 확정한 직후였죠. IOC 위원과 관계자들, 취재진이 빼곡했던 행사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일일이 목례를 하던 그의 표정이 생생하지만, 그의 이름 앞엔 이제 ‘고(故)’가 붙습니다. 이달 25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의 자민당 후보 유세에 찬조 연설차 나라(奈良)를 찾았다가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것은 8일 오전 11시 30분쯤, 사망이 공식화한 건 오후 5시 45분쯤입니다. 그사이 영국 권위지 이코노미스트부터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일본의 최장수 총리, 피격당해 엄중한 상태”라는 속보를 띄웠고, 세계 각국 정상 및 정부 당국자들은 피격을 규탄하고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쏟아냈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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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가 8일 오전 선거 유세 도중 피격 당해 쓰러져 있습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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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관계자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전한 첫 공식 반응은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소식과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일본 관계 당국이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인 만큼, 구체 언급은 자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섣불리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정무적 판단을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으나, 외신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합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서울지국장인 크리스찬 데이비스 등은 이날 트위터에 “한국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아베 피격에 대해 코멘트를 거절했다(declined)”고 올렸습니다. 이웃 나라 전 국가지도자가 피격으로 사망했는데 “노코멘트”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뉘앙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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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데이비스 파이낸셜타임스(FT) 서울지국장의 트윗.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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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 관계라는 험난한 지뢰밭 길을 걸어가야 하는 정부로선 오비이락의 심정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피격으로 심정지가 온 상황이고 일본경제신문(日經ㆍ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눈물을 보이며 ‘전 총리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상황에서도 과연 신중함이 최고의 가치였을지요. 외교엔 돌다리를 두드리는 신중함도 필요하지만 정확한 상황판단을 근거로 순발력 있는 대응을 하는 것 역시, 필수입니다.

마침 지금 인도네시아 발리에선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을 접하고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에게 다가가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라며 “아베 전 총리의 쾌유를 기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되지 않았냐고요? 같은 자리에 있던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보시죠. 닛케이가 피격 당일 오후 2시33분 전한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 옮깁니다.

“‘(왕이 부장은) 아직 구체적 코멘트는 어렵지만 내가 주일 대사로 재직하던 당시 (아베 전 총리에게) 신세를 졌다. 일·중관계 개선에 협력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회의가 종료된 뒤 그는 일본 기자들에게 다가와 일본어로 취재에 응했다. (왕이 부장은) ‘지금 (아베 전 총리의) 상황은 어떤가’라고 기자들에게 물었으며 ‘아베 전 총리는 방중한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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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보도 화면 캡처. 왕이 부장이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상당히 걱정했다는 내용을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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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시 일본과 복잡미묘한 관계이지만, 전 국가 지도자가 피격을 당해 생사가 위험한 상황이니 지극히 당연하게 걱정과 우려, 위로의 뜻을 구체적으로 전한 것입니다. 심지어 일본어로 직접 사정을 물었다는 점에서 왕이 부장의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그의 이런 행동과 발언은 닛케이 등 일본 취재진에 의해 상세히 전달됐습니다. 한국 박진 장관의 발언은 8일 오후 현재, 한국어 매체에만 주로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도 기민했습니다. 람 이매뉴엘 주일 미국대사는 피격 소식이 전해진 뒤 거의 바로 트위터에 유감과 쾌유를 비는 메시지를 올렸죠. 이매뉴엘 대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유력 인사입니다. 그와 정치적 성향은 정반대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아베는 내 친구였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죠.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도 본인의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애도의 메시지를 냈고, 인도와 대만은 물론 리투아니아까지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ㆍ일 관계의 앙금을 생각해서라도 오히려 이런 피격 사건에 대해선 적극 규탄하는 목소리를 신속하게 내는 게 맞지 않았을까요. 굳이 사망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까요. 물론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이날 저녁 애도 메시지를 내기는 했습니다. 안낸 것보다는 백배 낫지만 신속하다고는 볼 수 없겠죠.

피격 사건에 대해 규탄하는 메시지조차 신속히 내지 못한 것은 국익에 외려 반(反)합니다. 지난 정부의 반일(反日) 기조로 인해 외교부에서 일본 회피 현상이 벌어졌고, 일명 ‘재팬 스쿨’이라 불린 지일파 외교관들은 고초를 겪었죠. 8일 오후의 타임라인은 일본 이슈 관련 한국의 대응 역량이 지난 5년간 현저히 떨어졌음을 보여준 결정적 증거는 아닌지, 씁쓸합니다.

전수진 투데이ㆍ피플뉴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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