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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원숭이두창 전세계 확산

WHO, 전문가 반대에도 원숭이두창 비상사태 결정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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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우려로 감염추적 어려워
위원들 3분의 2가 반대했지만
사무총장 주도로 비상사태 관철
한국일보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한 시민이 원숭이두창 백신을 맞고 있다. 몬트리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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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에서 원숭이두창을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로 선포할지 검토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감염병 전문가로 구성된 긴급위원회 위원 15명 중 9명은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직권 결정으로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는 왜 이견 속에서도 전문가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강행했을까.

25일 WHO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이틀 전 원숭이두창 비상사태 선언은 감염 추적이 어려운 질병 속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논의 당시 전문가들의 견해는 팽팽하게 엇갈렸다. 찬성론자들은 원숭이두창 발병 경위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병 국가가 70여개국에 이르는 등 급격히 확산하는 점에 비춰 PHEIC 선언 조건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감염 급증세는 일부 국가에 국한돼 있는데다, PHEIC가 선언될 경우 당장 백신이 불필요한 일반 대중의 접종 수요만 키워 백신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다.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원숭이두창 감염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는 찬성론자들의 의견과 같은 맥락에서 선제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잘 모르는 질병이 새로운 전파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 만큼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춰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일보

25일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의 병원 원숭이두창 환자 격리병동 앞에서 한 의료진이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서 있다. 하이데라바드=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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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단에는 원숭이두창 감염자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진단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원숭이두창 발병 사례를 두고 유럽 질병예방통제센터(ECDC)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보건비상대비대응국(HERA)에서 모델링 작업을 벌인 결과, 코로나19 유행 초기처럼 확진자의 접촉 대상을 쫓아가는 추적 방식이 덜 효과적이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보고가 WHO에 올라왔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원숭이두창 발병 사례 대다수는 동성과 성관계한 남성이 병을 얻는 경우다. 이런 점 때문에 자칫 사회적 낙인 찍기를 당할까 두려운 환자들로부터 접촉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HERA 측은 환자가 연락하거나 접촉한 대상자가 여럿인 데다 익명인 경우가 많아 추적이 쉽지 않으며 장시간 환자를 격리해 두는 것도 어렵다고 보고했다. 이 때문에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사전에 백신을 맞고 예방 활동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WHO는 결론 내렸다.

가장 강도 높은 경계 선언을 내리면 각국의 보건당국이 이 사안을 면밀하게 관리할 뿐 아니라 감염 위험이 높은 이들 스스로 백신 접종을 하는 등 예방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염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이나 차별을 피한 채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비롯한 인권적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WHO는 권고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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