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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피고인은 옷이 그것밖에 없어요?”…요즘도 ‘갑질 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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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복장 지적에 이어 인격성 훈계

사생활 시시콜콜 따져 묻거나 타박하고,

재판장 심증에 따라 증인신문 유도하기도

“편견에 따른 재판 의심, 신뢰성 저하돼”


한겨레

재판 당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갑질 판사’들은 요즘 법정에도 일부 남아있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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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오늘 무슨 날이에요?”(판사)

“오늘요? 아, 오늘은 화요일입니다.”(피고인)

“오늘은 판결 선고 받는 날 아니에요? 피고인으로서 그런 복장을 하고 법원에 오는 것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판사)

지난 봄, 서울의 한 형사법정에서 판결선고일에 판사와 피고인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이날 피고인은 노란색 캐릭터가 그려진 남색 티셔츠를 입고 법원에 왔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피고인이 선고를 듣기 위해 피고인석으로 나오자 판사는 뜬금없는 날짜 질문을 한 뒤 “피고인은 옷이 그것밖에 없느냐”며 피고인의 복장을 타박했다.

해당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경제적 어려움을 참작해 달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피고인이 “제가 가진 옷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이 복장과 비슷하다”고 답하자, 판사는 “앞으로는 마음 자세를 바로잡고 성실하게 살라”는 인격적 훈계까지 한 뒤에야 판결을 선고했다.

판사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행사한다. 판사들 스스로 만든 ‘법관윤리강령’은 판사가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사명을 다하려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하고, 그 방법으로 “당사자와 대리인 등 소송관계인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법정에서는 ‘갑질 판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법관의 근무평정 기준에 공정성과 직무능력뿐만 아니라 친절성도 포함하도록 2011년 법원조직법이 개정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매년 변호사들을 상대로 판사들에 대한 평가를 받아 우수법관과 하위법관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판사들은 법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재판정에서 직접 목격한 사례 가운데, 개인사를 불필요하게 캐묻거나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 피고인은 서울에 살면서 사업상 이유로 제주도에도 거주지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 판사는 이 피고인에게 “피고인은 결혼을 했나?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집을 왜 두 채나 갖고 있나? 돈도 많이 드는데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다른 피고인에게는 서류를 받아볼 주소를 확인하면서 “송달이 안되는 이유가 뭔가? 혼자 사나? 처자식이 없나?”고 수차례 다그치기도 했다.

변호사들도 종종 재판부의 갑질에 대해 호소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인신문을 하면서 판사들의 부적절한 모습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 형사 법정에서 재판장이 변호인의 신문사항 하나하나에 한숨을 쉬거나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되물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이 나오자 재판장이 바로 다시 질문을 해서 불리한 답변이 나오도록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재판장의 심증에 따라 증인신문을 유도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것이다. 대전에서 민사재판을 주로 하는 한 변호사도 “원·피고를 가리지 않고 변호사 의견서를 타박하고, 당사자들에게도 유독 짜증을 내는 재판장이 있었다. 대전에 있는 변호사들은 전부 다 제발 그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고 토로했다.

법원 조직에 깊숙이 뿌리내린 권위주의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에는 법원 경위들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재판 방청객의 팔짱, 다리꼬기, 모자 착용 등을 지적하는 행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 보도에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원이 권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지적에 공감한다”며 대안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그 뒤로 경위 등 법원보안관리직 교육에 해당 내용이 반영됐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지난 1월 판결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을 찾았던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이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 만으로 출입을 제지당한 것이다. 30여분간 실랑이 끝에 판결문을 발급받을 수는 있었지만, 가방으로 조끼 뒷면의 구호를 가려야 했다. 차 지회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지난달 “집회 및 시위와 관련한 복장을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청사 출입을 차단한 것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법원은 그 어느 기관보다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기관인 만큼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길 기대한다”고 권고했다.

‘판사 갑질’은 그 자체로 재판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개선돼야 하는 문제로 지적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서 당사자들을 대하면, 당사자들은 판사가 편견을 가지고 사건을 다룬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이는 재판 자체에 대한 신뢰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법관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사건 당사자들을 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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