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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고] ‘저비용 고효율’ 보호관찰이 꽃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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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동안 언론마다 “풀려났던 ‘사망 뺑소니’ 촉법소년들 2년 뒤 중학생 집단폭행 구속” 기사로 넘쳤다. 2년 전 뺑소니 교통사고로 대학생을 숨지게 한 10대들이 이번엔 또래를 집단폭행해 3명이 구속됐다. 이들 공범 5명은 평소 알고 지내던 13세 중학생 2명을 각각 5시간과 18시간 동안 폭행한 혐의다. 구속된 3명은 2년 전 렌터카 뺑소니 사망사건을 일으켰으나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라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은 자들이다.

공범 가운데 4명은 현재 보호관찰 중인데, 정해진 시각에 오는 보호관찰관 전화를 제시간에 집에서 받으려는 꼼수로 피해자를 집 근처로 불러 공동 폭행, 상해 등을 저질렀다. 보호관찰 대상자가 주거지 상주를 위반하거나 특정 시간대 외출제한 명령을 어겨 전화를 제때 못 받으면 보호관찰관은 법원 판단에 따라 구인, 유치하거나 보호처분을 변경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은 보호관찰 분석기사도 덧붙였다. 전체 소년범 재범률(32.9%)보다 보호관찰 소년범 재범률(13.5%)이 낮아 보호관찰 효과가 입증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말고 보호관찰관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0년 기준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은 3만9291명, 소년담당 보호관찰관 수는 228명이다. 1명의 보호관찰관이 청소년 172명을 맡는 셈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초·중·고 학교마다 50~60여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늦은 학습자’에 대한 개별 지도는 어려웠다. ‘보호관찰 대상 소년’은 거의가 동네에서는 소문이 난 ‘특출한 소년들’이다. 이번 보호관찰 중인 소년들의 재범 사건은 보호관찰관과 대상 소년이 접촉하는, 만나는 횟수보다는 보호관찰제도가 재범을 방지하는 데 과연 도움을 주고 있냐는 ‘보호관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되었다.

이들에게는 전담 보호관찰관의 따뜻한 눈길, 손길, 말길이 많이 가야 한다. 어디에서 만나든 낯설지 않게 소년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고 즐겁고, 흥미 있고, 걱정스러운 일들로 대화가 오가다 보면 보호관찰 기간 중에 ‘꿈’도 갖게 된다. 소년 보호관찰이 기계적인, 획일적인, 형식적인 AI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성인 범죄꾼이 되는 통과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월17일 취임사에서 “범죄예방·외국인정책·교정·인권·법무·검찰 등 법무부의 업무 분야가 국민들께서 세계적인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실 수 있도록 직원들과 함께 전력을 다하자”고 호소했다. 수용시설이 아닌 담 밖에서 학업, 취업 등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우리 이웃으로 생활하면서 지도, 감독, 지원, 원호를 받는 보호관찰은 재범으로 이행하는 악순환을 막는 지킴이다. 보호관찰은 저비용 고효능의 형사정책의 꽃이자 보루(堡壘)이다. 미국 등 외국보다 100여년 늦은 1989년에 시작한 우리나라의 ‘소년 보호관찰’에 정성을 기울인다면 성인 범죄는 줄어들 것이며, 집행유예자와 가석방자에게도 붙이는 보호관찰을 제대로 한다면 범죄예방에도 기여할 것이다.

노청한 서울서부지법 민사조정위원·전 보호관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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