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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광화문]세대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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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2부장] '나는 찬밥 먹어도 아이는 따듯한 밥 먹인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그 맥락에서 국민연금을 '덜 내고 더 받게 하겠다'던 자들을 볼 때마다 손자 사탕 뺏어 먹는 노인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인구감소로 국민연금이 유지될 수 없는 구조임을 안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난해 총인구가 1949년 센서스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줄었다. 2016년 인구추계 당시 예상한 2032년보다 10년 이상 마이너스 시점이 앞당겨졌다. 출생아 수 30만명대인 2017년생이 만15세가 되는 순간부터 생산가능인구도 급감할 것이다. 이는 GDP(국내총생산) 축소로 귀결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생산가능인구가 우하향하면서 시작됐다.

무엇보다 내수산업군에 속한 기업의 타격이 클 것이다. 분유의 사례를 들면 간단히 이해된다. 분유시장 규모는 2016년 4705억원에서 지난해 3045억원으로 작아졌다. 2016년 4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가 지난해 20만명대로 내려앉은 탓이다. 분유 값을 올리고 프리미엄 분유를 팔아도 역성장했다. 이런 트렌드는 아동복, 산부인과·소아과병원, 문구·완구, 학원 등으로 번져간다.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벌써 한번 겪은 일이다. 2002년생이 정확히 보여준 경로다. 2000년생까지 6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가 40명만대가 된 첫해가 2002년이다. 대학 3학년생이 된 2002년생이 대입을 치를 무렵부터 대학 위기론이 커졌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자동차회사와 금융회사도 영향권에 든다. 식품, 의류, 유통 등도 마찬가지다. 예외는 없다.

여성의 경제참여나 자본투입이 높아지지 않으면 2030년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한국금융연구원)도 나와 있다. 성장의 둔화나 정체는 통화의 약세로 이어진다. 원화 사용자가 쪼그라드는데 강세가 될 수 없다. 국가재정은 악화일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1년 51.3%에서 2026년 66.7%로 급등한다고 내다봤다.

국민연금 적자와 고갈 시기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2013년 재정추계의 적자연도는 2044년, 고갈연도는 2060년이었다. 2018년 재정추계에선 적자연도와 고갈연도가 각각 2042년과 2057년으로 단축됐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적자여서 세금으로 지원한다. 역시 세금에서 나가는 기초연금 수급자는 2014년 약 435만명에서 올해 약 628만명이 된다.

가입자 분포가 역피라미드인 연금은 폰지사기와 다르지 않다. 지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돈을 내야 한다. 부담은 미래세대의 몫이다. 보험료를 더 내지만 연금이 적거나 없을 것이다. 세금도 더 많이 뜯긴다. 월세를 내면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현 세대를 부양해야 한다. 원화의 운명이 어두우니 에너지·식량을 수입하는 비용도 더 들 것이다. 자산축적이 될 리 없다. 소비위축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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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방치하면 현 세대의 연금도 위태로워진다.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다. '더 내고 덜 받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노년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은 예고된 결론이다. 권력과 자산을 가진 데다 수도 많은 세대에게 유리하게 국가정책은 흘러갈 것이다. 많은 이가 '자본가의 노예가 아니라 노인의 노예로 살게 하지 않겠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 방식으로 세대착취에 저항할 것이다.

저출산으로 삶과 사회의 문법이 달라졌다. 모든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연금과 재정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룰이다. 어쩌다 폭탄을 떠안은 특정 정부나 개별 부처만의 일로 여기면 안 된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그 파괴적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이들, 표로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유토피아는 못 물려줄망정 디스토피아를 물려줘선 안 된다.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다.

강기택 산업2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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