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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강 이남에 집중된 ‘물폭탄’에 속수무책… 도로 끊기고 전철 멈춰 곳곳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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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막대한 피해 원인은

강한 정체전선 동서로 길게 발달

기후변화로 특정지역에 쏟아져

동작 381㎜ 올 때 노원은 100㎜

시, 수방·치수예산 작년比 896억↓

10년 전 침수로 배수공사 했지만

단기간에 쏟아진 비 감당 못해

안전 담당은 공석… 부실한 대응

서초 자택 일대 침수… 전화 지휘

野 ‘尹 안 보인다’ 맹공에 반박

강인선 “재난마저 정쟁 도구화”

집무실 분리 논란 반복 가능성

8일부터 9일 새벽까지 서울에 115년 만에 최악의 폭우가 쏟아져 한강 이남이 물바다로 변하고 15명이 사망·실종하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저녁 시간에 물폭탄이 집중되면서 도로가 끊기고 지하철이 멈춰서 출퇴근길 시민들이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불편을 겪었다. 게다가 11일까지 중부지방에 최대 350㎜의 비가 예보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윤석열정부는 이번 폭우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보고 재난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세계일보

9일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 일대에서 전날 내린 폭우에 침수됐던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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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이날 오후 6시 기준 9명(서울 5명·경기 3명·강원 1명)이 숨지고 6명(서울 4명·경기 2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9명이었으며, 328세대 44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는 13살 딸과 40대 자매 등 발달장애 가족 3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빗물에 집이 잠겨 숨졌다. 서울 동작구에서도 반지하에 살던 50대 주민이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했고, 가로수 정리 작업을 하던 60대 구청직원이 생을 달리했다. 경기도에서는 산사태가 공장 기숙사와 지나가던 차량을 덮쳐 두 명이 숨지는 등 안타까운 사고가 줄을 이었다.

이번 폭우는 단시간에 물폭탄을 들이붓듯 집중돼 피해를 키웠다. 기상청은 서울 동작구의 시간당 강우량이 141.5㎜로 서울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5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8일부터 9일 오후 6시까지 누적 강수량은 서울 469.5㎜, 경기 여주 419.5㎜, 경기 광주 403.0㎜에 달했는데 특히 70∼90%가 8일 밤 쏟아졌다. 한 달치 내릴 비가 하룻밤 새에 내린 셈이다.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16시간 동안 7개 역에서 운행이 중단돼 출근대란이 벌어졌다. 서울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일부 구간 등도 전면 통제돼 도로 곳곳이 마비됐다. 이 외에 주택·상가 741곳과 선로 10곳이 침수되고 옹벽 4곳이 무너지는 등 재산피해가 잇따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재난안전상황실에서 집중호우 대처 관계기관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소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상황종료 시까지 총력 대응해달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천재지변은 불가피하지만 인재로 안타까운 인명이 피해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11일까지 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최대 35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보여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내린 비는 차차 충청권과 전북·경북 북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정체전선이 일시적으로 남하한 10일 낮에서 11일 오전 사이 충청권과 전북 북부를 중심으로 매우 강한 비가 내리고, 수도권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11일 낮에는 정체전선이 다시 한 번 북상하며 수도권에 강한 비가 예상된다. 이후 정체전선은 강한 비구름을 동반한 채 남하하며 12일 충청남부와 전북, 경북에 비를 뿌린 뒤 약화하겠다. 이날부터 11일까지 수도권을 비롯해 강원 중·남부내륙과 산지, 충청북부 등에 최대 350㎜의 비가 추가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충청권과 전북 북부, 경북 북서내륙 등에도 100∼300㎜가 예상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밤 집중호우 대처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10일 오전에도 또 한 차례 더 점검회의를 가진다. 이와 관련 당정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회를 열고 정부 수해대책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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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수위 급격 상승 중부 지방 폭우로 한강 수위가 급격히 상승한 9일 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와 통제된 올림픽대로, 여의상류IC 교차로 일대에 물이 차올라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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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시설 과부하 여전… 수방·치수비용까지 줄어 ‘속수무책’

8일 서울을 마비시킨 폭우는 종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와 관계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빚은 결과다.

이날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는 하루에 381.5㎜의 비가 쏟아져 우리나라 기상 관측 시작 이래 115년 만에 최악의 폭우로 기록됐다. 특히 한강 남쪽에 있는 지역에 강수가 집중됐다. 전날 누적강수량을 보면 강남구 326.5㎜, 서초구 354.5㎜, 송파구 307.0㎜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강만 건넌 성동구는 164.5㎜, 강동구는 170.5㎜만 내렸다. 노원구와 성북구 누적강수량은 100.0㎜에 그쳤다. 기상청과 직선거리로 약 20㎞ 남짓 떨어졌을 뿐이지만 강수량은 3.5배 넘게 차이 났다. 정체전선이 띠처럼 얇게 발달한 탓이다.

북태평양고기압과 북쪽에서 내려온 차고 건조한 공기가 정면충돌해 발달한 이번 정체전선은 매우 얇고 긴 비구름을 발달시켰다. 우리나라 북동쪽 공기 흐름이 정체되며 이곳으로 빠져나가야 할 찬 공기가 우리나라로 꺾여 들여오며 기존에 볼 수 없던 매우 강한 정체전선이 만들어졌다. 원래 저위도에 있어야 할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서태평양 중위도까지 올라온 것도 ‘물폭탄’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수증기 양의 증가나 해수면 온도 상승은 여름철 강수형태 변화를 유발하는 기후변화의 단면이다.

전날 서울 남쪽에 특히 폭우가 집중된 원인은 아직 기상청에서도 분석 중이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서울 내 차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직 세부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며 “남쪽 수증기와 북쪽 건조공기의 힘이 교차되며 남북으로 폭이 굉장히 좁은 선형 구름이 만들어졌는데, 힘의 균형은 어느 지역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비는 넓은 곳에 고르게 내리기보다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만큼 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지만 서울시의 수방 및 치수 예산은 2년 연속 줄었다. 서울시의 올해 수방 및 치수예산은 4202억원으로 지난해 5099억원보다 약 896억원(17.6%)이 줄었다. 2019년(6168억원)과 비교하면 2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최근 몇 년간 집중호우가 없어 미흡한 대응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 관계자는 “편의시설, 산책로, 자전거도로, 체육시설 등을 유지 관리하는 치수비용이 줄었고 수방비용은 예년 수준으로 줄지 않았다”며 “노후 하수관 정비 등 시급한 사안은 재난관리기금(재난계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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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테헤란로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진 8일 밤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 테헤란로가 물에 잠기면서 오도 가도 못한 차량들이 사거리에서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강남역 부근은 주변보다 10m 이상 낮아 서초와 역삼 등 고지대에서 물이 흘러와 고이는 ‘항아리 지형’인 데다 반포천 상류부 통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집중호우로 상습 침수되는 지역이다. 트위터


2011년 강남역 일대 침수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이후 시는 10년간 총 3조6792억원을 투입해 하수관로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설계문제 등으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를 아직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배수구역 경계조정은 하천수위보다 높은 고지대와 하천수위보다 낮은 저지대의 경계를 조정해 빗물의 배출방식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서초구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을 만드는 유역분리터널 공사는 600억원을 들여 올해 6월 완료됐다. 이번 공사로 시간당 약 85㎜까지 대응이 가능해졌지만 전날 강남 일대에 내린 비는 시간당 110㎜ 수준으로 이를 뛰어넘어 사실상 침수예방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이번처럼 단기간 폭우는 서울시의 강남역 배수시설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강남역 일대는 지하철 때문에 저류시설 설치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 고지대인 역삼, 신사 등 주변에서 빗물 유입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다시 찾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최근 인사로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자리가 공석이 돼 이번 폭우에 제대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제현 전 안전총괄실장은 지난 1일 행정2부시장으로 임명됐고 백일헌 전 안전총괄관은 지난 5일 광진구 부구청장으로 전출돼 현재 안전총괄실 실·국장 자리가 비어있다.

시는 “풍수해 예방 및 대응은 행정2부시장 산하 물순환안전국장 중심으로 서울시 및 자치구 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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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참변’ 반지하 찾은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9일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와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다세대주택을 찾아 현장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오세훈 서울시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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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尹, 새벽까지 피해 대응 실시간 지시”

대통령실은 호우 피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야권 공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새벽까지 중부지방 집중호우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했다”고 9일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초구 일대가 전날 침수됐던 상황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사실상 이재민이 되어버린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어제 집중호우 당시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윤 대통령은 어제 오후 9시부터 오늘 새벽 3시까지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지침 및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후 추가 브리핑을 열고 “재난 발생 때 대통령실이 초기부터 직접 지휘에 나설 경우 현장에서 상당히 혼선이 발생하기에 초기에는 ‘총력 대응하라’는 신속 지시를 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어느 정도 상황이 마무리되거나 진전된 다음 가는 게 맞다고 원칙을 정해놓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5월 서울청사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국정상황실·행정안전부·소방청·해양청·산림청 등의 회의에서 공유한 ‘범정부 매뉴얼’에 따랐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실에서는 그 원칙에 따라 국정상황실이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강인선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재난 상황마저 정쟁 도구화를 시도하는 민주당 논평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대통령이 자택에 고립됐다는 주장도, 집에 갇혀 아무것도 못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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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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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처음 민방위복을 입고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의 침수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신림동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현장에서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약자, 장애인 등의 지하주택을 비롯한 주거 안전 문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인재로 우리 국민이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추가 피해가 없도록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고 저도 상황을 끝까지 챙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전화 지시’ 논란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거주지와 집무실이 분리된 데서 발생한 것으로,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이 현재 머무는 서초구 자택에서 조만간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는 용산구 한남동 관저로 이동하게 되면 지금보다 이동 제한은 줄어들게 된다.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청와대를 용산 집무실로 옮길 때 국가안보에 전혀 문제없다고 자신했던 것이 불과 3개월 전”이라며 “향후 비상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벙커에 접근해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송은아·박유빈·안승진·이현미·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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