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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순덕 칼럼]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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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20번이나 읊조리면서도

대통령실 인사쇄신도 안 밝힌 회견

사랑 없는 사랑고백처럼 공허하다

‘내 식구’만 챙기는 인사부터 탈피하라

동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소회와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2022.8.17.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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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그러나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사랑 고백처럼 답답하고 공허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 놓고 국정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민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한번 따져 보겠다”고 답했다. 입때껏 뭘 하다 이제 와 ‘여러 가지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따져 본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통령실부터 인사쇄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돼서다. 대통령의 분신이랄 수 있는 대통령실장이라도 바꿔 대통령이 달라질 것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장이 미워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연애할 때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느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으라’며 늘 전화를 잊지 않았다”던 윤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상대의 뜻을 알고, 공감도 가능한 법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공감했다면 “정치 경험이 많지 않아서, 특히 도어스테핑을 하면서 태도나 말투에서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고치겠다”라고 사과했어야 했다.

‘부인 리스크’에 대해서도 “제 처가 당초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다른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특별감찰관을 속히 임명할 수 있도록 여야가 힘써주기 바란다”고 밝혀야 했다. 그랬다면 국민의 돌아선 마음도 상당 부분 풀렸을 것이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대통령 소통의 새 모습이라는 도어스테핑에 대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린다”며 당당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의 ‘집안싸움’에 대한 질문에도 “다른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어떤 논평이나 입장을 표시해본 적이 없다”며 솔직하지 않은 답변을 했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통 큰 사과와 수습 의지를 보였더라면 훨씬 대통령다웠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숨차게 소개한 100일간의 국정과제가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던 탈원전 정책을 윤 대통령이 폐기함으로써 우리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낸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 싶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미 연합 방위태세를 공고히 한 것도 박수 칠 일이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부상(浮上) 아닌 ‘거대한 몰락’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만에 하나 3·9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다면 윤 대통령이 어제 강조한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특히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서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는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에게서는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윤 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은 현미절편 같다. 영양가는 있을지 몰라도 먹음직스럽지 않다. 5년 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체리 장식에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처럼 화려했다. 문 대통령은 “서민 괴롭힌 미친 전세·월세를 잡을 더 강한 부동산 대책이 주머니에 많다”고 큰소리쳤고, 탈원전을 해도 전기료는 크게 오르지 않으며, 꼼꼼한 재원 대책으로 재정부담이 크지 않다고 장담했다.

문 정권의 ‘쇼통’에 홀렸던 탓일까. 문 정권 5년간 국가채무는 404조 원이나 늘어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려면 윤 대통령은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민의 협조를 얻어내야만 한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분골쇄신이 아니다. 지지율이 중요한 것도 좋은 국정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인사가 중요하다. 검찰이나 대통령 동문, 코바나컨텐츠 같은 ‘내 식구’만 챙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이 취임 전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은 한 뼘쯤 올라갈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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