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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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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순 맛! 맷돌 콩물 들어간다…드셔봐~ 청양고추 짠지 진한 여운 안겨준 콩국수 ‘이게 진짜지’[지극히 味적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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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전북 진안 오일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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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3일 토요일, 연휴의 시작이다. 아침 7시 전에 출발했는데 고속도로 들어가기 전부터 밀린다. 사고인가 생각했다. 기듯이 가다 보니 스치는 생각 “아, 연휴”. 집에서 10분 늑장 피운 것이 종국에는 1시간 더 운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평소에 3시간 조금 넘으면 가던 진안이 이날은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소요 시간이 거의 5시간이었다. 막힌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차라리 편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수만큼이나 진안도 거의 가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가긴 여러 번이었지만 제대로 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안이 아예 연이 없던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근무할 때 진안의 홍삼을 취급했다. 그 당시는 홍길동도 아니고, 홍삼을 홍삼이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1996년 홍삼 전매제가 폐지됐어도 여전히 홍삼이라는 용어는 당시 담배인삼공사만 사용했다. 일정 이상의 시설을 갖추지 못하면 홍삼을 만들어도 홍삼이라 못했다. 인삼을 생산하는 금산, 포천, 풍기, 진안의 삼 가공업체들은 거의가 홍삼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태극삼이다. 완주군 소양면을 넘어 진안으로 가는 길에 오랜만에 보는 홍삼 업체 이름이 있었다. 송화수 홍삼, 2000년에는 아마도 진안 홍삼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전북 진안 오일장은 4일과 9일이 든 날에 열린다. 지난 장수 오일장과 마찬가지로 별 기대는 없었다. 지난 4년의 경험, 사람이 그리운 곳은 그리움에 비례해 오일장이 작아짐을 알기 때문이다. 50m 남짓한 시장통에 나란히 할매들이 앉아 있다. 시설은 최신식이어도 사람은 그대로인 곳,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만 나이 든다. 잠시 서서 주변을 봤다. 앉아 있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거의 모두 할매다. 오십 줄 넘긴 필자도 여기서는 젊은이다. 길지 않은 시장통을 천천히 걸었다. 어디선가 나는 향이 발목을 붙잡는다. 향긋한 향이 너무도 좋아 주변을 살폈다. 향의 주인공은 고수, 아침 일찍 따왔기에 서울 시내 슈퍼마켓에서 향기 말라버린 고수와 ‘끕’이 달랐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공기 중에 산뜻한 향이 퍼져 있다. 누가 사갈까 조바심에 얼른 사고는 할매에게 잠시 맡겨놨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탓이다. 그렇게 몇 번 시장통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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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볕을 그대로 머금은 노각 옆에 원주 새벽시장에서 노렸던 통통한 토종오이가 자리 잡고 있다. 1열의 초록 나물은 부추와 메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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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로가 물들어가는 계절, 50m 남짓한 길지 않은 시장통엔 ‘여름 것’과 ‘가을 것’들이 섞여있다
시내의 국수 맛집, 숙성된 반죽으로 뽑은 면발이 ‘탱글탱글’ 살아있네!
담백한 맛에 후루룩, 입가심으론 사장님 추천 반찬 한입…캬, 찾았다 ‘콩국수 3대장’

골이 진 마름모 모양의 홍로가 물들기 시작했다. 이른 추석에 맞게 계절은 변하고 있다. 새가 쪼아 망가진 것은 청 담그는 용도, 그 옆에 파란 홍로가 햇사과인 양 있다. 시장을 다니면 계절이 알게 모르게 변한다. 입추가 지난 8월 중순은 여름것과 가을것이 섞여 있다. 노각의 노란색에서 여름이 무르익었다. 노각을 지나니 푸른빛 띤 작은 오이가 보였다. 원주 새벽시장에서 그렇게 사려 했던 토종오이를 여기서 만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이와 고수로 김치를 담가도 될 듯싶었다. 오이를 샀다. “도시에선 이런 거 없어.” 덤을 담고 있는 할매 대신 이웃한 할매가 말로 거든다. “네, 없어요. 이건 뭔가요?” 나물처럼 보이는데 도통 머리에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메밀, 메밀 순.” 그제야 생각이 났다. 고추장, 된장 넣고 조물조물 무친 고소한 나물로만 기억하니 날것을 보고 이름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여름것이 한창인 장터의 끄트머리를 보니 싸리버섯이 벌써 나왔다. 버섯이 나왔다는 것은 가을 시작이라는 것. 싸리버섯 옆에서는 다양한 모종이 한창 손님을 부르고 있다. 배추며, 양배추가 주인공. 순이 두 개 나와 있을 때 심으면 80~90일 지나 우리가 알고 있는 알찬 배추가 된다. 8월 말부터 9월까지는 김장 배추를 심는다. 배추 모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안은 또한 마른고추가 유명하다. 마침 알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오일 장터에서 보이는 언덕에 진안 11개 읍·면에서 난 마른고추 시장이 섰다. 아직 낮에는 덥기에 마른고추 시장은 한산해도 준비하는 손길은 바쁘다. 고추로 유명한 곳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에서만 고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꽤 괜찮은 곳들이 많다. 진안도 그중 하나다. 여름 작물인 옥수수와 복숭아를 파는 시장 한편에 배추 모종과 싸리버섯 그리고 마른고추로 가을이 살짝 발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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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 휴게소를 떠난 셰프가 있는 모래재에서 만족스러운 코스 요리를 즐겼다. 1인 손님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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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 오는 길에 완주군 소양 나들목으로 빠져나왔다. 진안의 모래재를 가기 위함이다. 장수 오일장 편에서 소개한, 육십령 휴게소를 떠난 셰프가 자리 잡은 곳이다. 메타세쿼이아 숲을 지나 식당에 들어섰다. 예약을 미리 해서 혼자도 식사할 수 있음을 알았다. 혼자라서 거부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세 가지 세트 중에서 국내산 두부로 요리한 것을 주문했다. 전채가 나오고 이내 본식사가 나왔다. 몇 가지 전채, 주요리, 후식으로 이뤄지는 작은 코스지만 꽤 만족스러운 식사다. 우리밀로 만든 피자가 궁금해 따로 요청했다. 피자 또한 식사로 손색없는 양과 맛이다. 모래재 너머 (063)433-1964

여름은 콩국수의 계절. 콩이 맛없어지는 시기 또한 콩국수의 계절과 맞물린다. 여름은 콩도, 쌀도 맛없어지는 시기다. 콩을 수확하는 늦가을이 콩이 가장 맛있는 시기로 콩국수 또한 맛있다. 햇것의 메밀이 나오면 축제를 한다. 해콩이 나왔을 때 콩국수 축제하는 곳을 못 봤다. 메밀국수나 콩국수나 시원하게 먹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메밀만 한다. 누군가 축제를 연다면 바로 가서 먹을 것 같다. 진안은 맛난 콩이 난다. 전북의 산지 또한 마찬가지다. 진안 시내에 국수만 하는 곳이 있다. 면 반죽은 하루 숙성한다. 숙성한 것으로 면을 뽑고는 콩물에 말아 낸다. 맷돌에 간 콩물은 보자기에 넣고 짠 것으로 찐득거리지 않는 예전의 맛이다. “찐득거리지 않아서 좋네요.” “그건 모르겠고, 맷돌로 갈아요. 앞에 짠지도 드셔봐. 청양고추 짠지.” 탄성 있는 면을 씹고 콩물을 마셨다. 마무리로는 청양고추 짠지,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예전에 먹었던 인제, 양구와 더불어 맛나게 먹은 콩국수 집이다. 면으로만 따지면 시판 국수 쓰는 집하고 다른 이 집이 ‘찐’이다. 홍희네식당 (063)43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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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지만 특별하기는 어려운 순댓국. 진안의 순댓국에는 내장과 피순대가 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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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은 전국 어디나 있다. 도축장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시장만 있으면 순댓국 식당이 있다. 도축장이 있다면 몇 집이 모여 있기도 한다. 진안에서 예정한 식사 리스트에 순댓국은 애당초 없었다. 묵밥과 백반이 있었다. 모래재에서 밥 잘 먹고 왔기에 일부러 마이산 탑사를 갔다 왔다. 마이산 남부 주차장에서 진안 시내로 가다 보면 묵밥집이 있다. 점심 장사만 한다. 얼추 배도 꺼지고 묵밥 한 그릇 할까 했는데 문을 닫았다. 그 덕에 시내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기사로는 쓰기 힘든 차림새. 보통의 순댓국 먹듯 한 끼를 때우는 수준이었다. 다음날 다른 곳을 써야지 했다가 거기 또한 문을 닫아 찾아간 곳 또한 순댓국집. 여기가 진짜였다. 국밥이 먼저 나온다. 건더기를 먹다 보면 그때 밥이 나온다. 공깃밥이 반 조금 넘게 담겼다. 밥보다는 건더기 먹다가 배가 부른다. 내장 가득, 고소한 피순대가 실하게 들었다. 위가 작은 나는 보통을 주문했어야 했다. 보통과 특 차이는 1000원. 특이 8000원이다. 주말에는 사람이 밀린다. 조금 일찍 나서면 줄을 안 선다. 시골순대 (063)433-2751

장수군에서는 커피가 다소 아쉬웠다. 장수군청 앞에서 마신 커피 빼고는 성공한 적이 없다. 진안군에서는 신중하게 커피를 골랐다. 사실 신중할 필요도 없다. 전국과 세계를 다니며 커피를 내린 이가 7년 전부터 고향인 진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진안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서울 올라가는 길에 들렀다. 몰고 다니던 커피 트럭은 마당 한편에 인테리어가 된 지 오래, 커피 트럭보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카페는 책방도 겸하고 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기 전, 제대로 내린 커피 한잔 받아 들고 출발했다. 커피를 핸드드립하는 몇 분 사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길이 좋아지면 운전하는 사람이 좋다. 다만, 남아 있는 사람은 거동하기 힘든 사람들뿐이라는 이야기에 서로가 공감했다.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조금 돌아가더라도 마을을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4차선 도로가 있는데 굳이 빨리 가겠다고 터널까지 뚫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진안에서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여기다. 카페공간153 0507-1428-5536

고개를 돌리면 마이산이 반겨 주는 꽤 괜찮은 그곳, 그곳이 진안이다.

▶김진영

경향신문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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