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했던 고(故) 존 싱글러브 예비역 미국 육군 소장의 추도식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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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한 미국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맞서 이를 막아낸 고(故) 존 싱글러브 미국 육군 예비역 소장의 추도식과 안장식이 19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싸운 전쟁 영웅인 싱글러브 소장은 지난 1월 테네시주 자택에서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싱글러브 장군은 1977년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본국에 소환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한반도 내 미군 '넘버 3'인 유엔사 참모장으로 근무하던 싱글러브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카터 대통령의 국방정책에 반대했다. 군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그 전해 대선 공약으로 주한미군 3만2000명을 5년에 걸쳐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국방 및 외교 공직자들은 주한미군이 중국과 북한 공산주의 정권의 남하를 막는 저지선이므로 오히려 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전 주한미군참모장,언론인대회참석차 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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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싱글러브 장군은 WP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전쟁의 길로 이어지는 오판"이라고 백악관을 정면 비판했다. 싱글러브는 기자가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지만, 본국 송환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조지아주에 있는 부대에서 다른 보직을 받았지만, 대학 강연에서 카터 대통령과 다른 정책을 주장하는 등 마찰을 계속하다가 35년간 복무를 마치고 강제로 퇴역당했다. 카터 대통령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철회했다.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지 않았으면 더 높이 진급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에 싱글러브 장군은 "내 별 몇 개를 수백만 명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글러브 소장은 1943년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ROTC로 훈련받은 뒤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입대했다. 육군 특전사의 전신인 OSS(전략사무국)와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했다.
CIA 서울지부에서 일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3년 '철의 삼각지대' 김화지구 전투에서 대대장으로 중공군과 맞서 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태용 주미대사가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진급과 명예보다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싱글러브 장군의 말씀은 아직도 우리 국민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면서 "영웅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한미 동맹은 앞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사는 "(장군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상징이었고, 동맹이 갈림길에 섰을 때 동맹을 옹호했다"면서 "그는 동맹을 구했고, 그 결과 동맹은 오늘날까지 탄력 있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장관도 조전을 보내 "고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각별히 헌신했다"며 "싱글러브 장군은 진정한 영웅이며, 미군 철수를 고민하는 어려운 순간 한미동맹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군인으로서 경력을 건 인물"이라고 기렸다.
장례식에 참석한 부인 조앤 래퍼티 여사는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했다"며 고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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