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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살기 위해" BTS 춤춘 아이들에 놀라서 쓴 책…美아마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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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무용과 오주연 교수는 어린 시절 발레와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이론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 후 교수직을 따냈다. 'K팝 댄스'의 사회적 맥락과 무용적 의미를 분석한 책의 표지에는 BTS 지민의 춤을 형상화해 그린 그림(김경태 작가)을 실었다.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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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리사는 이 시대 탑 댄서인 것 같아요. 다음 연구 주제로 삼고 싶을 정도로…."

발레와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과 교수가 "K팝 댄스는 이제 현대무용의 한 장르"라고 선언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에서 무용 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오주연(38) 교수다. 지난달 미국에서 펴낸 『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K팝 댄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팬덤화하는 법)』(이하 『K-pop Dance』)를 들고 한국을 찾은 그는 19일 인터뷰에서 “춤 동작은 배우면 누구나 출 수 있지만 큰 무대를 홀로 가득 채우는 응축된 카리스마와 매력, 스타성을 타고나는 공연자는 몇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아이돌 중 지민(BTS), 태민(샤이니) 등 뛰어난 댄서들이 너무 많다"며 "그들에 대한 연구를 언젠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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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교수는 블랙핑크 리사에 대해 "K팝 아이돌 중 탑 댄서라고 생각한다. 무대에 눈이 쏠리게 하는 카리스마와 매력을 타고난, 손에 꼽는 댄서"라고 말했다. 블랙핑크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유튜브 BLACKPINK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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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Dance』는 최근 K팝 댄스의 특징, SNS와의 연계성, 사회 계층에 따른 K팝 댄스 팬덤 특성 등 해외에서 'K팝 댄스'를 즐기는 팬층의 다양한 면을 담은 책이다. 미국 아마존 대중춤·커뮤니케이션 분야 신간 중에서 지난달 1위에 올랐다. 오 교수는 "미국의 초‧중학생들은 당연하게 K팝 댄스를 아는데, 이걸 소개하고 분석하는 학문적인 텍스트가 하나도 없었다”며 “최근 K팝 댄스가 번지는 사회적 현상을 기록하고 안무를 무용 이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10초·사각형 SNS 잡아라… 상체 집중 K-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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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아이돌 대표주자인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는 턱을 받치는 동작, 거울을 보며 얼굴을 두드리는 손동작, 얼굴 주위에서 팔을 꺾어가며 하는 손동작 등을 주요 안무로 삼았다. 10초, 세로로 찍는 짧은 영상 '틱톡'에서 활용하기 좋은 좁은 범위의 춤이다. 결과적으로 '러브 다이브'는 SNS 상에서 회자되며 상반기 아이브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아이브 '러브 다이브' 뮤직비디오 캡쳐. 스타쉽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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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K팝은 소셜미디어에 특화된 ‘상체 중심 댄스’로 진화했다. 오 교수는 “K팝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춤 장르라서, 10초 남짓의 틱톡 영상 이용자를 사로잡기 위해 댄서 얼굴 주변의 팔 동작이 많고, 표정 변화도 크다”며 “2차원 사각형 안에서 선을 강조하기 위해 상체가 마를수록 강점이고, 부피감을 보완하기 위해 강한 파핑(Popping, 전신 근육에 힘을 줬다 이완시키는 동작의 스트릿댄스)을 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걸그룹 춤을 배워보니 전신이 울려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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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온'은 많은 백업댄서를 활용한 대표적인 무대다. 한동안 K팝 아이돌 멤버수가 늘어나며 백업 댄서의 역할이 줄어들던 시기를 지나, 최근에는 작아진 안무를 무대에서 보완하기 위해 많은 백업댄서를 투입해 규모감을 더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2월 '지미 팰런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해 '온' 퍼포먼스를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공연하는 모습. 유튜브 '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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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각형의 상체, 얼굴 위주의 댄스가 콘서트 무대 등에서 다소 작아 보일 수 있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려한 백업 댄서의 역할이 늘어났다"고 했다. “한동안 K팝 그룹 멤버 수가 늘어나면서 백업 댄서가 거의 필요 없었는데, 최근 들어 큰 무대에서 많은 댄서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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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개된 싸이의 '댓댓'도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쏘는 동작을 주요 포인트 안무로 삼았다. 10년 전 '강남 스타일'에서 온 몸을 쓰는 큰 안무를 내세웠던 것과 차이나는 부분이다. 싸이 유튜브 'officialpsy'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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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현대무용 전공한 무용이론가가 본 K팝 댄스, "이젠 현대무용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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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교수는 "신발을 신었을 때와 달리 맨발로 춤을 추면 발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동작에 영향을 끼친다"며 "무용을 전공한 게 아니라 훈련만으로 맨발 댄스를 소화하는 K팝 아이돌은 대단한 경지"라고 평했다. 사진은 2020년 1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 출연해 '블랙 스완' 맨발 퍼포먼스를 하는 BTS. 유튜브 'The Late Late Show with James Corden'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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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은 정통 무용계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였다. 그래서 연구서나 연구자가 거의 없었다. 오 교수는 "이제는 K팝 댄스가 완전히 춤의 한 장르가 됐다”고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등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댄스 학원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K팝 매뉴얼’이 생긴 게 그 반증이다. "탱고를 잘 춘다고 살풀이를 잘 추는 건 아니듯, 춤을 엄청 잘 춰도 'K팝 스타일'이 아니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장르가 확고해졌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한국의 K팝 댄스는 한국전쟁 직후 미국 문화가 유입될 때 들어온 미국 춤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한국의 경쟁사회, 아이돌 문화 등이 더해지며 독창적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기록을 잘해놓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서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며 “K팝 댄스는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강도 높은 훈련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었던 장르”라고 강조했다.



'살기 위해 K팝 춘다'는 이민자들… "새로운 코리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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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토트넘 홋스퍼와의 친선경기를 위해 방한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 FC 선수도 아이돌 싸이퍼와 함께 BTS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커버 영상을 찍었다. 최근의 K팝 댄스는 따라하기 쉽고, SNS를 통해 놀이처럼 접하는 게 특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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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는 2015년 뉴욕에 자리 잡은 이민자 청소년들이 BTS 춤을 추는 현상에 흥미를 느껴 K팝 댄스 연구를 시작했다. "형편 어려운 청소년들이 '살기 위해 춤을 춘다'고 말하는 게 뜻밖이었고 사회적 맥락을 분석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단순한 '현실도피'나 '즐거움'을 넘어 '진짜 K팝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춤을 추더라. 이들에게는 'K팝 아이돌'이 '코리안 드림'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무용을 했고, 미국 사회의 이방인으로 오래 지낸 오 교수 자신의 이력이 K팝의 사회적 맥락은 물론 무용 특성을 모두 짚는 데 도움이 됐다. 미국에서 같은 시기 박사 과정을 시작한 연구 동료들 가운데 자신만 한국인인 데다 K팝이 '소수 장르'여서 강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밤 12시까지 연구실에서 글만 쓰며 버티던 시절도 있었다. 오 교수는 "결국 박사 과정도 가장 먼저 끝냈고, 논문 실적이 좋아 교수 자리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됐다"며 "K팝이나 무용계나 20대 후반에 은퇴하는 빼어난 인재들이 많은데, K팝 댄스는 거대한 블루오션이니 이를 연구하는 쪽으로도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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