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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초중고 개학·등교 이모저모

초등교과서에 ‘자유민주’ 쓴 건 11곳중 2곳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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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6학년이 배울 사회과목

文정부가 만든 검정기준에 따라

출판사 대부분 해당 용어 안 써

교과서 2종만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기술

조선일보

1948년 12월 국제연합(유엔)은 총회를 열고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사진은 승인 소식을 들은 정부 각료들이 축배를 드는 모습.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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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검정(檢定) 교과서로 바뀌어 적용되는 초등학교 5~6학년 사회 교과서들에서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용어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모든 교과서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현했고, 대한민국이 국제연합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받았다는 사실을 쓴 교과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내년부터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초등학교 5~6학년 사회과 교과서 검정 합격 결과를 지난달 31일 공개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에 국정(國定)으로 발행해온 초등 3~6학년 교과서(국어·도덕 제외)를 검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출판사들은 기존 문재인 정부가 만든 교육과정 지침에 따라 검정 교과서를 개발해왔다. 올해부터 3~4학년 사회 검정 교과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고, 내년에 사용할 5~6학년 첫 검정 교과서들이 이번에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최근 교육부가 ‘6·25 원인·과정을 서술하라’는 부분 등이 빠진 초등 사회 과목 교육과정 시안을 공개해 논란이 됐는데, 이 교육과정에 따라 앞으로 만들어질 검정 교과서는 2026년부터 학생들이 배운다. 초등학교는 한국사 과목이 별도로 없고, 사회 과목의 한 부분으로 배운다.

본지가 이번에 검정 심사에 합격한 교과서들을 조사한 결과, 11종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언급한 것은 2종(금성·미래엔)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초등 사회 교과서를 바꾸면서 기존 교과서에 있던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고치는 대신 헌법 조항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부분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번 검정 교과서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조차 11종 중 2종에서만 언급됐다. 나머지 9종은 ‘민주주의’라고만 썼다.

‘건국절 논란’이 일었던 1948년 8월 15일에 대해서도 11종 교과서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 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바꿨는데, 이번에 검정 교과서들도 그 표현을 그대로 쓴 것이다.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제대로 서술 안 해

조선일보

초등학교 5~6학년 사회교과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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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교과서 대부분이 1948년 12월 국제연합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사실을 기술하지 않았다. 11종 가운데 천재교과서와 교학사 2종만 이 사실을 썼다. 7종은 이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고, 비상교과서와 비상교육은 ‘선거가 가능한 한반도 내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 ‘국제연합의 총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승인’했다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기존 국정 교과서를 개정하면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설명 부분을 통째로 빼버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 표현을 삭제해 논란이 일자 집필책임자 한춘희 부산교대 교수는 교육부를 통해 입장을 내고 “1948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 언급된 ‘유일 합법 정부’의 인정 범위를 한반도 남쪽으로 할 것인지, 한반도 전체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서술을 뺀 것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 유엔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유엔 임시위원단 협의 및 감시 아래 선거가 벌어진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것이라는 역사학계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유엔총회 결의를 오역(誤譯)해서 빚어진 해석으로, 그동안 일부 좌파 역사학자가 주장해 온 내용이다. 이번 검정 교과서도 대부분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명백한 사실을 제대로 싣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 교과서 ‘촛불 집회’ 사진·삽화 실어

11종 가운데 8종(천재교육·교학사·지학사·미래엔·동아·비상교과서·비상교육·김영사)은 2000년대 민주주의 발전을 설명하며 ‘촛불 집회’ 사진이나 삽화를 실었다. 일부 교과서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라면서 학생들이 탐구하게 하기도 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교과서는 11종 가운데 4종(천재교과서·금성·비상교육·김영사)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교과서 개정 당시, 기존 국정 교과서에 있던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은 삭제하고, ‘촛불 집회’ 사진을 포함해 논란이 됐는데, 이번 교과서도 상당수가 비슷한 형식을 보인 것이다.

대다수 교과서가 ‘한반도 미래와 통일’ 단원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과 남북 예술단 합동 공연, 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한 선수단 공동 입장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을 다룬 교과서는 지학사 1종뿐이었다.

전국 초등학교들은 이번에 검정 심사에 합격한 11종 교과서를 살펴보고 내년에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지 결정한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5~6학년은 역사를 처음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에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균형 잡히게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 검정 교과서들은 대부분 그런 부분이 상당히 부족해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11종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학교에서 사용한다. 2026년부터 학생들이 배울 사회 교과서는 윤석열 정부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만들어야 한다. 최근 교육부는 2026년부터 초등학생들이 배울 사회 교과서의 기본 내용을 담은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공개했는데, 이 시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4년 후 학생들이 배울 교과서는 이번에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들보다 더욱 큰 논란에 휩싸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시안에서 기존 교육과정에 있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과 6·25 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알아보자는 내용 등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검정 교과서 집필자에 따라서 이 부분을 아예 다루지 않거나 간략하게만 서술할 수도 있다.

내년 5~6학년의 사회 교과서 집필 책임자 A씨는 “이번 검정 교과서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교육과정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2026년 학생들이 쓸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우선 교육과정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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