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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인터뷰]"N번방 방지법', 제2의 피해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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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정세진 기자, 강주헌 기자] [프로젝트 리셋. "한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어…디지털 성범죄 대응 총체적 문제'"]

"지금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총체적 문제가 있다"

텔레그램에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또 터졌다. 수법이 2년 전 조주빈(박사), 강형욱(갓갓)의 N번방 범죄와 유사해 '제2 N번방'이라 불린다. 이번에 주동자 가명은 '엘'이다. 피해자를 협박해 신체 영상·사진을 찍게 하고 수천명이 보는 텔레그램 메신저방에 뿌렸다.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들이다.

지난해 말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성착취물 '필터링' 기술도 도입되고 경찰 위장 수사도 시작됐다. 하지만 디지털 성착취는 이어졌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텔레그램상 성착취 범죄가 많다는 추측도 있다.

프로젝트 '리셋(ReSet)'은 13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N번방 방지법은 시공간 제약 없이 이뤄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지금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총체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 리셋은 제2 N번방 피해자들 제보를 받아 이들 경찰 신고를 돕거나 상담받을 기관을 연결해주는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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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 피해를 입은 14세 A양이 자필로 적은 쪽지. /사진제공=미디어플랫폼 얼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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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과 경찰 등에 따르면 엘은 텔레그램에서 '당신 영상·사진을 퍼뜨리겠다'며 피해자를 겁 줘 신체를 찍게 했다. 이렇게 만든 성착취물은 여러 텔레그램 메신저방에 올렸다. 어떤 메신저방에는 참가자가 5000여명 있었다고 전해졌다.

수법이 2년 전보다 진화했다. 제1 N번방 때 상당수 피해자들은 이른바 '일탈계' 운영자들이었다. 일탈계는 얼굴은 가리고 신체 사진을 찍어 올리는 SNS 계정을 말한다. 제1 N번방 주범들은 이런 사진을 '가족과 지인에게 뿌리겠다'며 일탈계 운영자들을 성착취했다.

이제는 피해자 사진을 구해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등)을 만들거나, 피해자 개인정보를 덧붙여 허위로 만든 성착취물 등이 피해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리셋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약점'이 있거나 '떳떳하지 못해' 협박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라며 "자기 사진이 어딘가에서 불법 촬영돼 돌아다니거나 SNS에 게시한 사진으로 성착취물을 만들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협박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찰이 이날까지 확인한 피해자는 7명이다. 대부분 아동·청소년들이다. 경찰은 엘 범죄에 공범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리셋 측은 피해자가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리셋 관계자는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등을 모니터링해오고 있는데 가칭 '엘'의 수법과 동일한 수법을 사용하는 범죄자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며 "누구나 VPN(가상 사설망) 앱을 사용하여 다크웹을 넘나들 수 있고 텔레그램 성착취 단체방의 성착취물들이 디시인사이드 같은 공개된 공간에 서스럼없이 퍼지는 현 상황에서 영상이 공유된 텔레그램 방을 모두 파악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제2 N번방 못 막은 N번방방지법..."그동안 성착취물, 걷잡을 수 없이 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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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통·소지 강력처벌 촉구 기자회견 '제2의 N번방, 여성에 대한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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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방지법은 지난해 12월10일 시행됐다. 엘은 그 후에도 범행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N번방을 추적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였던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 5월까지도 성 착취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N번방방지법은 인터넷상 성착취물과 불법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인터넷 사업자는 성착취물,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면 삭제 조치해야 한다. 법 적용의 일환으로 네이버, 카카오는 성착취물, 불법촬영물을 걸러내는 '자동필터링' 기술도 도입했다.

하지만 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N번방 범죄가 벌어진 텔레그램은 '높은 보안성'이 특징이다. 수사에도 비협조한다. 경찰로선 사이버 범죄가 벌어지면 이용자 IP주소를 받아야 한다. 텔레그램은 이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제2 N번방 범죄도 텔레그램의 비협조에 수사가 가로막힌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개할 수는 없으나 경찰 나름의 수사기법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 운영사업자들에게도 N번방방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리셋 측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N번방 사태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리셋 관계자는 "성범죄의 가해자가 한 번 성착취물 등을 유포하기 시작하면, 유포된 가상 공간(예: 단체방)에 접속해있던 또 다른 가해자들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고 했다.

해외 공조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라질과 독일은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디지털 범죄와 관련, 수사당국과 사법당국의 노력 끝에 텔레그램 경영진의 사과문을 받았다. 리셋은 "이런 국가들도 있는데 한국 수사당국이 텔레그램 회신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해외 공조 수사가 미비한 것이며 한국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리셋 관계자는 "N번방 이후 언론과 대중이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 관심을 잃었다가 다시 제2 N번방 사건으로 분노하는데, N번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제2 N번방 사건이 유달리 독보적이었던 것도, 이런 범행 수법이 유일했던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는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며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하여 수사하는 경찰 내 부서나 인력 및 자원도 부족하다. 수사방식의 한계점이 큰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전담수사과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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