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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광주교도소서 나온 유골, 5·18 행불자 유전자와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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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나온 신원미상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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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신원미상 유골 중 일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됐던 광주시민의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와 5·18기념재단의 말을 종합하면 5·18조사위는 지난 2019년 12월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나온 신원 미상 유골 262구 중 1구가 광주시에 등록된 5·18 행방불명자의 유전자 정보와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를 얻었다. 또 다른 2구도 행불자와 일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와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5·18조사위는 그러나 유전자 분석이 완료되지 않아 이들의 정확한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법무부는 2015년 10월 광주교도소(10만6771㎡)를 문흥동에서 삼각동으로 이전하고, 기존 터에는 법 관련 교육시설 ‘솔로몬 로(LAW) 파크’ 조성을 추진했다. 2019년 12월20일 터파기 작업 중 교도소 안 무연고자 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이 뒤섞인 상태로 발굴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분류작업을 거쳐 유골이 262구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중 시료를 채취한 160구의 유전자 자료를 올해 6월 5·18조사위로 이관했다.

5·18조사위는 유전체연구기업 디엔에이링크와 함께 최신 유전자 분석 기법(SNP)을 동원해 교도소에서 발굴한 160구와 광주시가 보관하고 있던 5·18 행발불명 신고자 171명의 가족 377명의 유전자를 대조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훼손 정도가 심한 인체 시료를 분석할 때 쓰이는 에스엔피 기법은 부모, 형제뿐 아니라 방계(삼촌, 조카 등)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허연식 5·18조사위 2과장은 “160구 중 60여구의 분석을 끝냈고 나머지 100여구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정확한 신원과 사인 등을 아직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광주시가 접수한 5·18 행방불명자 신고는 모두 242명으로, 이 중 84명만 5·18보상법이 규정한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다. 이 중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묘지 무명열사묘를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고 2019년 12월 출범한 5·18조사위는 2명을 무명열사묘역에서 추가 확인했다. 나머지 76명의 소재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옛 광주교도소 터는 그동안 유력한 5·18 행불자의 암매장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는 3공수여단 장교 265명과 사병 1261명이 1980년 5월21일부터 24일까지 주둔하며 광주∼담양간 도로를 봉쇄했다. 3공수여단은 교도소에 접근하거나 담양 쪽으로 이동하는 차량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을 살상했다.

1980년 5월31일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광주교도소에서 민간인 27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고 505보안부대 기록은 28명 사망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고 서만오(당시 25살)씨가 가족들에 의해 1980년 5월26일 교도소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고 광주시청은 교도소 내 8명, 교도소 앞산 2명을 발굴하며 11구만 수습해 최소 16~17구가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5·18연구자들은 3공수여단의 최초 주둔지였던 전남대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도 암매장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11공수여단 62대대 하사 출신 김아무개씨는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62대대장 인솔 아래 일부 병사들이 보병 복장을 하고 광주로 가서 가매장지 발굴작업을 한 것으로 안다”고 증언해 계엄군이 암매장한 주검을 은밀히 수습했다는 의혹도 있다. 3공수여단 출신 부대원들도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1997년 검찰조사 때 암매장을 했거나 목격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등은 2002~2003년, 2006~2007년, 2009년, 2017년, 2020년 등 다섯차례에 걸쳐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암매장 조사를 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3공수여단 하사관 출신 ㄱ씨는 2018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교도소 서쪽에 9구를 묻었다. 하지만 내가 묻었던 그 자리에 하수처리장이 들어서 찾을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5·18연구자들은 1983년 교도소 하수처리장 이전 공사 때 나온 희생자 유골이 교도소 내 공동묘지로 옮겨졌고 이곳에 교도소 경비교도소 건물이 들어서며 다시 옮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연구소 팀장은 “국립5·18묘지에서 신원이 확인된 행방불명자와 달리 이번 광주교도소 사례는 5·18 당시 암매장이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며 “5·18 왜곡이 사라져 유가족들이 더는 상처 입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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