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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취재파일] '환율전쟁' 중인데 '독립성 타령'…국민연금은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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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하는 원-달러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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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상승 파죽지세…1천5백 원 넘나?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말 그대로 '파죽지세'이다. 지난주 금요일 1천4백 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은 월요일 개장하자마자 급등하기 시작해 22원 오른 1천431.3원에 마감했다. 이달 들어서면 1달러에 93.7원이 올랐고, 작년 말보다는 242.5원이나 올랐다.

달러가 필요한 기업들은 물론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낸 가계는 비상이다. 달러를 살 때는 금융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이 비교적 낮은 개장 초에 사고, 달러를 팔 때는 장이 마감하기 직전 환율이 높을 때 파는 트레이딩 전략을 구사하며 환차익은 극대화하고, 환차손은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쓴다. 달러가 필요한 경제주체는 최대한 빨리 사고, 달러를 보유한 주체는 최대한 늦게 파는 이른바 '리드 & 래그(lead & lag)' 현상이다.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주체는 달러를 내놓지 않고, 달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더 확보하려 하며 모두가 환율 상승에 베팅하니 환율은 자꾸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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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와 한국은행 국제총괄팀은 환율이 1천4백 원을 돌파한 다음날인 지난주 금요일 에야 "국민연금과의 원-달러 스왑 거래를 하기로 했다."며, "외환시장의 수급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하려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주고 달러를 사는데, 국민연금은 그동안 해외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환율 상승의 주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앞으로는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시 필요한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지 않고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를 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외환수급 안정화 조치는 외환시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달러 환율이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천4백 원을 돌파하면 1천5백 원까지 줄달음칠 것이라는 외환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환율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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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직전부터 현재까지 원-달러 환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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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설마 1천4백 원을 넘을 수 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부도 4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한국 경제의 튼튼한 기초체력을 자랑하며 환율방어에 자신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저항선은 1천4백 원에서 1천450원 선으로 밀려났고, 이제는 1천450원 선도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업들은 이미 1천5백 원 돌파를 기정사실화하고 외환수급을 준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1천5백 원을 넘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이었던 1천597원도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2천 원에 육박했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를 염두에 둔 말이다.

3천3백억 달러 보유 국민연금…내놓은 것은 달랑 1백억 달러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등, 달리 말하면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미국의 잇따른 금리인상에 따른 세계적인 달러 강세의 영향이 크다. 여기에 4개월 연속 계속된 무역수지 적자와 확대된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더해졌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물론 서학 개미들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도 달러 강세를 겨냥해 해외투자에 나서면서 달러의 수요는 급증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원화의 본질 가치에 비해 올라도 너무 오르는 환율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대처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천364억 달러, 한 달 전인 7월 말 보다 21억 달러 줄어드는데 그쳤다.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에 힘쓰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보유한 달러를 외환시장에 공급하며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국 연준이 세 번 연속 기준금리를 0.75%p나 올리면서 연초 0~0.25%였던 기준금리를 3~3.25%로 3%p나 올리는 사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에서 2.5%로 1.5%p 올리는데 그쳤다.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을 뛸 때 우리는 베이비 스텝으로 대응한 것이다. 기준금리를 동결해도 금융시장에서 시장 금리는 뛰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걱정이란다.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은 지난 23일 외환스왑을 발표했지만, 그 한도는 1백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추가로 해외 투자를 할 때 달러가 필요하면 그동안 외환시장에서 사던 달러를 한국은행에서 빌리겠다는 것으로, 한은과 국민연금의 원-달러 스왑으로 외환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달러는 없다.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보기에는 말 그대로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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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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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전체 해외투자규모, 다른 말로 달러 보유 규모는 3천3백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자산은 대부분 환 헤지를 하지 않고 단순히 달러를 매입해 나간 투자자금이다. 이 투자자금에 대해 선물환 매도를 하면, 현재 환율 수준에서 그동안 발생한 환차익을 실현하고 외환시장에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신규 공급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환차익도 실현하고, 국내 외환수급 상황도 뚜렷하게 개선할 수 있는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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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거론하며, 외환시장 안정에는 소극적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경우 해외투자자산의 5% 한도에서 환 헤지를 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으로 정부에서 운용 방침을 좌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입장에서 달러를 공급할 의무는 없다. 기금 운용은 수익률 극대화가 원칙이다. 지금도 환 헤지 비율을 채우지 않는 상황이다. 환 헤지가 기금의 수익성에 도움이 될지 불확실하다. 기금 투자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너무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재 환율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이 수준에서 더 오르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고, 국가 경제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지금이야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올인해서 달러 가치가 급상승하고 환율이 올라가지만,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그때는 환율을 내리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그동안 발생한 환차익도 까먹게 된다.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지급 규모가 늘어나고, 보유한 해외투자자금을 팔아 회수할 때가 되면 국민연금의 보유 해외자산 매각은 원화 강세(환율 하락)의 원인이 되고, 수출로 경제성장을 하는 한국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자산에 엄청난 환차손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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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뒷짐…국민연금은 '청개구리?'



최근 외환시장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보이는 국민연금의 행태는 원-달러 환율이 너무 하락해서 걱정하던 2014년 전후와 정반대 되는 것으로, 이른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 모르는 행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의 정반대 행위를 하는 '청개구리 심보'에 비유되기도 한다.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해외투자 시 환 헤지를 하지 않는 '매크로 헤지' 방식을 도입한 것은 지난 2015년, 국민연금은 이후 환 헤지 규모를 줄여 2019년부터는 해외 투자 시 환 헤지를 전혀 하지 않는다. 2015년 이전에는 해외 투자를 할 경우 전액을 환 헤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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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투자를 할 때 환 헤지를 하려면 해외 투자를 위해 달러를 산 만큼 달러 선물환 매도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급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로 수출기업이 애를 태우던 2014년 당시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하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금 집행 시 그만큼 신규 달러 수요가 발생하고, 달러를 사들여 원화 강세를 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원화 강세로 고민하던 외환정책 당국과 금융 당국이 국민연금에 환 헤지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국민연금은 당시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외환시장 관계자는 밝혔다.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경우 수출업체는 득을 볼 수 있지만 수입업체는 견디지 못하고 도산할 수 있다.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는 더욱 뛸 수밖에 없다. 수출업체도 필요한 원자재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수출을 해도 외화 금융이 막혀 자금을 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민들이 내는 연금으로 구성된 국민연금은 국가 위기 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부를 해외로 유출하고 장기적인 수익률도 스스로 깎아 먹는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근 국가와 투자자 간 국제소송 사태로 번진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지 말고 국민연금이 인수했다면 어땠을지, 서울파이낸스센터와 강남파이낸스센터 빌딩을 해외 자본이 아닌 국민연금이 인수했다면 위기 극복과 함께 수익률도 더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금 국내 외환시장은 기본적인 수요 공급이 꼬여 있다. 수급이 꼬여 있는데 정부와 한은, 시장 참가자, 투자자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면서도 과감하게 시장에 풀지 않는다. 시장 참가자들은 설마 하면서도 위기 국면까지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고를 제외한 순수한 민간의 대외 순자산이 7천억 달러라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쏠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의 말 대로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막대한 외완보유고를 가지고 있다면 행동으로 그런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무역이 경제를 선도하는 한국에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정책으로 그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책당국의 행태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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