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일사일언] 운하와 장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일사일언 / 중국 대운하


지난 25일 중국 난징농업대학이 주최한 국제 학회에 참석했다. 현지 시각 오전 8시, 그동안 참여한 학회 가운데 가장 이른 시간에 시작한 발표였다. 학회 주제는 ‘연결의 힘: 운하와 문화적 맥락’이었고 내 발표 제목은 ‘한국의 역사학자가 왜 지금 대운하 시대라는 화두를 제시하는가’였다.

난징농업대학에서 운하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국제 학회를 연다니 의아해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사실 2014년 이후 중국은 현재까지 ‘운하열(運河熱)’이라고 불릴 정도로 운하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2014년은 우리나라의 남한산성과 함께 중국의 ‘대운하’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해였다.

이후 대운하는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동되어 더 주목을 받았다. 육상 실크로드인 ‘일대(One Belt)’와 해상 실크로드인 ‘일로(One Road)’를 연결하는 루트로 대운하 문화대(文化帶)가 설정된 것이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대운하를 탐방한 후 대운하에 대한 ‘보호’ ‘전승’ ‘이용’을 지시했더니, 대운하가 지나는 동부 지역의 여러 대학에 우후죽순 운하 연구소 및 연구단이 꾸려졌다. 난징농업대학의 ‘대운하 문화대 건설연구원’은 그 하나일 뿐이다.

이 연구원의 연구 주제는 대운하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발굴해 새로운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운하를 새로운 문화적 기호로 정립하기 위한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기존 중국의 문화 기호인 장성(長城)이 ‘단절’과 ‘구별’로 기억되는 반면, 운하는 ‘연결’과 ‘소통’의 상징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과 관련한 중국의 역사는 정주 문명과 유목 문명의 길항과 ‘구별’을 배경으로 한다. 반면 운하의 역사는 북방과 남방의 ‘연결’과 소통을 지향했다. 역사 속의 장성과 운하를 어떻게 재소환하고 기억하는지의 문제는 새로운 중국의 역사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운하의 길을 갈 것인가, 장성의 길을 갈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조선일보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