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2 (화)

[기고] 원전과 더불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올여름 유럽이 기록적 가뭄으로 고통받는 동안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재앙을 겪었다. 많은 전문가는 기상재해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꼽는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녹색분류체계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환경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녹색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그리고 지난 9월 20일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을 포함시키는 초안이 발표됐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한층 더 다가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올해 7월 유럽연합(EU)도 같은 취지에서 이미 원자력을 EU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바 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원자력 핵심 기술 연구·개발·실증은 탄소중립과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으로 보아 '녹색부문'에, 원전의 신규 건설과 계속운전은 탄소중립을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으로 보아 2045년까지 한시적으로 '전환부문'에 포함했다. 원전 안전성 향상을 위한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신규 건설에 바로 적용하되, 계속운전의 경우 2031년부터 ATF 적용이 요구된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과 그 이행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우리 녹색분류체계는 원전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최대한 담보하면서 관련 기술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형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차세대 원전 기술을 별도 분야로 명시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환경부가 발표한 초안에 따르면 미래형 원전들도 기존의 대형 원전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받아 건설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차세대 원전들이 원전과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적으로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날씨에 따라 간헐적인 반면, 원자력은 기저부하 전력을 항상 제공하면서 간헐성을 보완하는 부하추종운전도 할 수 있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고 이용률이 90% 이상으로 높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계수는 약 12로 풍력과 비슷하고, 이용률은 풍력 및 태양광 대비 4~6배 높다. EU의 평가에 따르면 원전은 안전성 관점에서도 재생에너지와 유사하거나 보다 우수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재생에너지와 비슷하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비전력 분야의 탈탄소를 위해 무탄소 전력을 이용한 대규모 수소 생산이 필수적이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로 고온의 수증기를 분해하는 방식의 수소 생산은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온에서 운전되는 차세대 원자로는 훨씬 효율적으로 전력 및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선 녹색분류체계가 주춧돌이 돼 원전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원전 산업에 투자가 확대돼 기술력이 향상되고 산업 기반이 더욱 탄탄해지고,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고 험해서 길을 잃거나, 제때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장점을 최적으로 활용한다면, 두 무탄소 에너지원이 끄는 쌍두마차가 지혜로운 지름길로 인도하리라 믿는다.

[김용희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