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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 "10년에 이른 문학상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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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음화가 양화로 급변하는 시간 더디게 오길"

(서울=연합뉴스) 어느덧 10년에 이른 문학상의 무게를 반영하듯 심사위원으로서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활발한 활동을 하는 기 수상 작가들의 면모가 이를 더욱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한다. 한 달여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붉은 피아노', '우리만 아는 곳', '속도의 안내자', '심장 소리를 따라서', '가짜 임산부' 등 5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다시 한 달여 간의 숙독 과정을 거쳐 9월 16일 수림문화재단에서 본심을 가졌다. 각 편에 대한 의견 개진과 대상작 추천을 통해 기왕의 소설들과의 차별점이 두드러지지 않는 작품들을 제외하고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가짜 임산부', '우리만 아는 곳', '속도의 안내자' 등 3편이었다.

'가짜 임산부'는 팀장의 추근거림에 시달리며 매일 퇴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던 복지연 대리가 자신도 모르게 느닷없이 임산부 노릇을 하게 되면서 새삼스럽게 회사 생활과 사생활의 균형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를 주요 서사로 선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성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직장 갑질 및 애환의 양상이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씁쓸한 실존적 회의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에피소드의 디테일이 선명하고 각각의 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어 이야기의 흡입력이 상당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출산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소설의 주요 화두로 설정해낸 시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임산부 체험 도구를 착용하고 가짜 임산부 노릇을 한다는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평이 없지 않았다, 그 결과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개연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가볍게 사안을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리만 아는 곳'은 일종의 판타지적 SF소설의 외양을 선택한 소설이었다. 잠드는 일과 꿈꾸는 일을 자유자재로 하는 이들, 소위 '슬리퍼'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들과 달리 잠드는 일과 꿈꾸는 일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슬리피'들에게 대가를 받고 자신의 꿈을 제공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불면증과 수면 부족의 시대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참신하고 독특했다. 착상이 흥미롭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체 역시 오랜 숙련의 시간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설정이 최근 상영된 같은 꿈을 꾸는 두 남녀에 관한 헝가리 영화를 상기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짜임새 있는 1부와 달리 태민, 용준, 다인, 지은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2부가 유기적으로 얽히는 대신 다소 엉성한 양상을 보인다는 평도 없지 않았다. 이야기의 얼개를 넘어서는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세부 묘사의 힘이 요구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올해의 당선작으로 결정된 '속도의 안내자'는 처음부터 다수 심사위원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다.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된 1장의 경마장의 묘사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의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경마에 환호하는 군중과 거기에 사용되는 말의 도핑검사를 담당하는 주인공의 일상이 우리 시대의 탐욕과 과잉 에너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는 평도 많았다. 경마장 도핑 검사소의 유일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인 주인공이 가깝게 지내는 경마장 직원으로부터 '약 배달'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으며 전개되는 이 작품의 서사는 때로 부모의 죽음과 고모의 돌봄을 둘러싼 추리소설의 외양을 띠면서 자본과 기술의 논리 아래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욕망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일그러진 음화를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이 과정은 그들의 욕망을 조율하고 형성해내는 거대 자본의 음험한 음모를 폭로하는 지점으로 확장되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가짜 욕망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외양 아래 사회비판적 면모를 적절하게 숨기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만했다. 시의성과 독특한 설정, 디테일의 구체성 등 신인답지 않은 기량을 선보인 이 작품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택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현실의 음화가 양화로 급변하는 시간이 부디 더디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 2022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 = 윤후명(소설가. 심사위원장), 성석제(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신수정(문학평론가. 심사평 대표 집필), 양진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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