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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성폭력 피해자 보호조항 삭제 제시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돌봄 현장 위험 모르나” 노조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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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2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비스원 쪽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철회를 촉구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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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소속 돌봄 노동자 김모씨(51)는 활동지원사 일을 한 지 10년 넘은 베테랑이지만, 이용자 집에 방문할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성희롱 발언이나 불쾌한 신체적 접촉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객이 성관계를 묘사하는 노골적인 말을 해서 너무 당황한 적이 있다”면서 “이용자가 민감한 신체적 부위를 고의로 노출해 피해를 당한 동료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지만 피해 경험을 얘기해도 사람만 바꿔 다시 보내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공공복지를 담당하는 사회서비스원이 방문 돌봄노동자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안을 두고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고 있다.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는 성폭력 피해를 본 돌봄노동자에 대한 보호 대책이 명시된 ‘고객에 의한 성폭력 방지 및 조치’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서비스원 측은 해당 조항을 일부 삭제하는 안을 제시했다.

29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측의 지난 8월 단체협약안을 보면, 성폭력 피해를 겪은 돌봄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 조항이 일부 삭제·후퇴된 것으로 확인된다.

고객에 의한 성폭력과 관련한 기존 단체협약 조항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회사 측의 법적 조치 의무이다. 고객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회서비스원은 “즉시 수사기관에 이를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다. 성폭력 피해를 겪은 노동자에 대해 사회서비스원은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사용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원이 개정을 요구하며 제시한 단체 협약안에는 노동자에 대한 근무지 변경과 유급휴가 제공 등 보호조치 의무가 사라졌다. 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상위 항목인 ‘고객에 의한 성폭력 방지 조치’ 조항이 통째로 삭제되고 이를 보완할 내용이 제안되지 않은 것이다.

사회서비스원 측은 대신 ‘대상자에 의한 중대한 피해 예방·보호’ 항목을 만들어 각종 폭력에 대한 노동자 보호 조치를 포괄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안을 보면 “사회서비스원은 폭언, 폭행, 성폭력을 하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형사고발 또는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기존 단체협약에서는 회사의 ‘의무’였던 부분이 ‘가능’의 영역으로 후퇴한 것이다.

사회서비스원은 지난 3월에도 성폭력 피해 발생 시 ‘직원이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에만 해당 항목에 명시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6일에는 사회서비스원 측이 올해 10차례 걸친 노사 교섭에도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발전적 노사관계 정립”을 이유로 노조에 기존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사회서비스원 관계자는 “아직 해당 안이 확정된 게 아니고 회사 측 제안을 넘겨준 것일 뿐”이라면서 “기관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항목 위주로 제안을 한 것이지 (일부 성폭력 관련 조항이 빠진 안을 제시한 데)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리된 안이 만들어지면 기관장이 참여하는 본교섭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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