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기자수첩] 바보들에게 부과되는 위험 프리미엄을 피하려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전준범 정책팀 기자




“바보들이 운영하는 경제는 위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an economy run by morons has to pay a risk premium).”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달 27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의 경기 부양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적었다. 영국 경제학자 다리오 퍼킨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트러스 총리가 이끄는 영국 새 정부는 최근 70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해 파운드화 급락을 촉발했다. 투자 유치와 경기 활력 제고를 위한 부양책이라는 취지와 달리, 영국 신정부의 감세 정책은 파운드 가치를 3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다. 감세안을 위해 적자 국채를 늘리겠다는 구상도 시장 혼란을 부채질했다. 빚을 늘리는 감세안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가뜩이나 취약한 영국 정부의 재정 여력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 것이란 우려가 파운드화 투매로 이어진 것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까지 뒤흔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영국 영란은행(BOE)은 ‘장기국채 대량 매입’과 ‘양적긴축(QT) 연기’라는 프리미엄을 지불해야만 했다. 물론 BOE 조치는 임시방편일 뿐 영국 정부가 친 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건 아니다. 바보가 더 내야 할 프리미엄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트러스 총리의 정책 오류가 ‘킹달러(King Dollar·달러화 강세)’에 신음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현시점에서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정책은 금융시장에서 불신 받고, 시장을 망가뜨리는 ‘바보짓’이라는 점이다. 강달러 충격을 견디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 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긴축의 시대에 빚을 늘리는 정책은 나라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점 등도 중요한 교훈이다.

파운드화 쇼크로 주가와 원화 값이 떨어졌던 지난 28일 오전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본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기본소득 등을 32번 외쳤다. 요즘 시기에 나랏돈을 펑펑 뿌리겠다는 거대 야당 대표의 연설을 국제 금융시장은 어떻게 봤을까. 영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목격하고도 그는 위기 극복 동참보다는 포퓰리즘을 택했다.

이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최근 이탈리아 정권 쟁탈에 성공한 조르자 멜로니가 제시한 공약과 유사하다. 보육원 무상화 등의 포퓰리즘 공약을 앞세운 멜로니는 강력한 재정 지출과 감세를 약속하며 총선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탈리아가 멜로니 공약대로 돈을 뿌리면 곧바로 금융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과다 채무국인 이탈리아가 감당할 위험 프리미엄은 영국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을 철회하고 건전 재정을 확립하겠다고 선언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킹달러로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통화 가치가 무너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재정 건전성이 통화 가치를 지키는 방패막이다. 이 의지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

이에 그치지 말고 정부와 한국은행 등 재정·통화 당국은 시장과 더욱 밀접하게 소통해야 한다. 시장의 오해로 유발될 수 있는 정책 오류를 없애기 위해서다.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기회를 수시로 만들어 국민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기영합이 만든 바보 프리미엄에 나라가 망가질 것이다.

세종=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